앞으로는 학교를 다니면 도서관을 제일 먼저 찾게 될 것 같다. 학교마다 도서관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있는 학교는 무엇보다 햇빛이 잘 들어서 좋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대학 시절 햇살 아래 잔디밭에서 학우들과 대화하던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간들을 떠오르게 한다.

 

햇살을 즐기며 서가를 돌다가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골랐다. 책의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EL MAESTRO DE ESGRIMA. '검술 교사'로 번역했더라면 눈에 안띄었을 것 같다.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검의 대가는 일류 검술 교사의 명예에 관한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여기에 스페인 역사와 미스테리를 한 데 섞어 맛있게 버무린 이야기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가슴 아픈(?) 사랑 얘기는 덤이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게 아닌 <명예>를 고집하시는 거죠? 명예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가치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돈이라든지 권력, 야심, 증오, 열정 등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 그 어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우연히, 아니면 단순히 발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네요. 어쩌면, 그 어휘가 어떤 식으로든 제 돌아가신 선친의 이미지와 부합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용맹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늘 자긍심을 느꼈으니까요. 명예로운 죽음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지요. 심지어 인생 전부를 정당화하기도 하고요." (중략)   "그 속에는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상당히 가톨릭적인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한 죽음을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구원이나, 뭐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부친의 명예로운 죽음은 그리 큰 소용이 없을 겁니다...... 다만, 저는 선친께서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영원한 어둠의 문턱을 넘나들며 마지막 전투를 벌이셨던 일을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신의 존재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신가 봅니다."   "별 관심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극한까지 견디시는 분이시지요. 그건 무책임하고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신사답다고 할 수가 없지요."
페이지 : 144~145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주인공처럼 명예로운 인간이 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말투나 행동도 신중해지고 가슴속에 자부심 같은 것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습다. 아니 무섭다. 책이 사람을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50대 남자들에게 추천한다. 주인공의 나이가 그 정도 쯤 되니까 어리석을만큼 명예를 지키며 사는 주인공의 삶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50대가 아니더라도 왠만한 남자라면 이 소설이 전해주는 낭만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낭만은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서 느끼는 낭만과 비슷하다.

 

스페인 사람들 이름이 길고 어려워서 외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요 등장 인물이 많지는 않기에 내용 이해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역사적 상황이 꽤 묘사되는데, 왕정과 공화정의 정권 다툼이니까 크게 집중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검, 대가, 아르트로페레스레베르테, 스페인,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