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읽고 바로 쓰느냐 읽고 좀 더 생각하고 쓰느냐.

각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쓰면 읽고 난 느낌과 감흥을 그대로 잘 살릴 수 있는 반면 감정이 쏟아져 넘치기 쉽다.

읽은 지 좀 되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하고 다시 읽은 책을 생각하고 느낌을 떠올려야 한다.

오자마자 신나게 읽은 책.

성장소설이다.

성장 소설은 성장 소설인데 뒷 표지의 커커스 리뷰에 적힌 것처럼 여러 계층의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작품이 맞다.

가장 인상깊었던 글귀.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질 선생님이 잠모어 부인과 브렌트와 만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처음엔 브렌트는 이 말을 자신의 잘못, 죄책감과 관련지어 해석을 한다.

이후 잠모어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버스여행을 하며 미국 네 귀퉁이에 바람개비를 만들어가며 점차 그 의미의 해석이 변해간다.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

브렌트라는 인물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남들에게 좀 더 잘 보이고싶고 아이들의 파티(모임)에 끼어 즐겁게 어울리고싶고, 예쁜 여자 아이를 친구로 갖고싶은.

초대받지 않았던 파티에서 마음에 둔 여자아이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와 죽고싶다는 생각으로 난폭음주운전을 한다.

그러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다른 차의 운전자를 사망에 이르는 사고를 낸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를.

사과하고 이해하고 속죄하는 자리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는 딸아이의 이름을 새긴, 딸아이를 닮은 바람개비를 미국 네 귀퉁이에 세워달라고 한다.

서점을 뒤지고 뒤져 바람개비 만드는 책을 한 권 사서 나무와 톱과 공구를 가방에 담고 버스에 몸을 올린다.

그리고 떠난 여행.

처음 만들었던 바람개비는 무척 만들기 힘들고 단순한 편이었다.

그러나 바람개비의 숫자가 하나씩 늘 때마다 브렌트의 솜씨는 더욱 나아져갔다.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첫 바람개비에서 마지막 책 없이 브렌트 혼자 브렌트만의 바람개비를 만들 때까지의 과정이 브렌트의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불지 못했던 하모니카 연주가 한 곡 한 곡 늘어가는 과정도.

매 여행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건네받았던 독일 친구의 2년간의 선원 생활을 북크로싱하고 여행의 목적에 대해 거짓말해왔었는데 마지막 바람개비를 세우면서 화가에게 진실을 토로하며 스스로를 용서해 가는 과정도 역시.

그제서야 브렌트는 길 선생님의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네 개의 바람개비가 각기 다른 곳에서 공부만 알던 여자아이에게 사랑을 찾아준 주문이 되고, 삶에 지친 청소부에게 삶을 이어갈 깨달음을 주고, 부모의 끝없는 기대로 힘들어하던 한국인 입양아에게는 부모님의 이해의 마음을 선물해주고,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에게 희망을 선물해주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길 선생님의 그 말과 브렌트의 밝은 얼굴이 함께 떠오르며 큰 감동이 일었다.

이 작은 책 한 권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마음의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만드는 느낌이다.

읽으면서 책에 나온 2년간의 선원생활이란 책이 읽고싶어지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고,

좋은 책을 한 권 골라 북크로싱을 하고싶어졌다.

바람을 만드는 소년의 바람개비는 미국에만 세워진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도 세워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