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란 걸 지닌 모든 짐승을 얼어붙게 만드는 달이었다......

만월의 밤, 정호연은 모북리에 서 있다.  고아가 된 그가 일곱살때 들어왔던 모북리는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함께 타임캡슐을 묻었던 친구들의 모습이나 삶도 변해있고 마을도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흔의 자신의 모습이 가장 많이 변해 있었다.

암으로 인해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은 그에게 의사는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저항해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수술 시기를 놓친 그에게 정말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그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모북리로 돌아왔다. 기억못할 동창들을 대신해 타임캡슐을 열고 그들의 비밀을 공유하고 동창들과의 술자리에 나가고....일상의 시간을 즐기던 그가 쓰러졌을때 동창 순임이 찾아왔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 돈 좀 빌려줘....라고.

짧은 단편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는데,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모르게되었다. 독신의 시간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남은 날에 대해 집착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호연의 자세를 보며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지도 허무나 포기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상이 뚝 끊긴 듯한 느낌.  죽음도 이러한 것일까. 일상이 어느날 뚝 끊겨 버리고 마는.

더블에는 다른 8편이 함께 실려 있지만 [근처]만큼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작품은 없었다. 그냥 뚝 끊어져버린 [근처]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으로 나중에는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 삶이란 이런 것인가에 대한 회한을 남겨놓았다. 

side A만 읽었을 뿐인데 나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그 무언가를 얻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