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개와 삼 년간 모텔을 전전하면서 사는 남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버리기 위해 떠났다는 여행에서 그는 늘 편지를 쓴다. 사람을 숫자로 기억하는 주인공은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여고생 239, 56, 201, 99, 0, 109, 32 등등 그들에게는 이름대신 숫자가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이름보다 숫자로 기억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에서도 그랬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역시 특이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매일매일 편지를 썼던 그는 답장이 도착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여행끝에 돌아온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한무더기의 편지들을 보고 놀란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답장. 그에게 답장은 삶의 의욕과 맞먹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

그래 살아가는 의미는 사소해 보이는 단 하나의 일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고독은 그렇게 작은 불씨 안에서 따뜻해지는 법이니까.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적당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드는 생각이다.
정말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그저 답장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살아 있다.
안심이 된다. 내일도 살아갈 주인공의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