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체온이 흐르지 않는 차가운 플라스틱 피부, 감정이 담겨지지 않은 붉은 눈동자.

섬짓함이 느껴지는 표지의<로보포칼립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이 인간을 배반하며 촉발된 거대 전쟁을 그려낸다. 이 책의 내용이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기 쉬운 전쟁의 대상이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기계가 인간의 적이된다는 것이다. 집안의 가전제품들부터 복사기와 같은 사무용품들,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차까지....모든 기계들이 인간에 대항한다.

상상해보라.

어느날 갑자기 집안의 모니터나 전기밭솥이 나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온전한 자연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을 편리하게 만든 도시가 가장 무서운 곳이 된것이다.

이야기는 코맥 월러스가 최후의 전쟁인 '제로아워' 이후 컴퓨터에 보관된 영상과 자료를 보며 기록으로 남기면서 시작된다. 현재에서 출발해 전쟁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으로 되돌아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로 거슬러 올라오는 형식이다.

증언에는 자신을 창조한 니콜라스 와서먼 박사를 살해하는 인공지능 로봇 아코스, 해커인 러커, 로봇방어법을 추진한 마르셀로 펠레스의 어린 자녀 마틸다와 놀런, 노무라 다케오와 그의 로봇 마키코, 석유 채굴 노동자인 드와이트 보이, 저항군을 조직하는 존슨과 그의 아내 돈이 등장한다. 각자의 증언에서 시작해 전쟁이 진행되면서 서로의 연결고리가 만들어가며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각자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 증언으로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상황 자체는 다르지만 예기치못한 상황에 맞닥드린 사람들의 두려움을 통해 긴장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소재 자체는 사실 새로운것이 아니다. 인간과 로봇의 전쟁을 다룬 것은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함께 로봇의 관점. 바로 '깨어남(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성을 통해 로봇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뿐 아니라 선택 또한 가능하게 된다. 이제 이들의 선택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처음 책을 읽기전에는 표지 속 로봇이 아코스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는 데 이야기를 읽고나니 각성전의 나임 오투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자유의지'를 로봇이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우리는 그것을 프로그래밍이 아닌 우리가 가진 것과 똑같은 '온전한 의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궁금증이 생겨난다.

우리는 분명 인간의 편리를 위해 기술을 발달시킬 것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생활주변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과연 로봇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책속에서 니콜라스 박사는 아코스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달라. 인류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무엇이든 말이야"

그런데 만약 이 대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들이라고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