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겨울을 그리고 겨울에 내리는 새하얗게 내리는 눈을 너무 좋아했다. 눈이 적게 내리든 눈이 많이 내리든 일단 밖으로 나갔다. 내리는 눈을 손으로 잡아도 보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나의 흔적을 만들어도 보고 내리는 눈을 얼굴에 흠뻑 적셔보기도 했다. 손이 빨갛게 시리도록 눈을 만지며 놀았던 것을 생각하면 눈이 실제로는 따뜻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눈이 오면 당연하게 만드는 눈사람을 너무 좋아했다. 좋아하는 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집에 덩그러니 놓여져 혼자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눈사람은 햇빛이 비치는 곳에 만들지 않으면 그리고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서 내가 창문으로 내려다보거나 직접 와서 들여다보면 항상 그자리에서 따뜻하게 웃어줬다. 그래서 눈사람이 마지막에는 정말이지 온 몸으로 울어댔던 것 같다. 나에게 처음으로 겨울의 추억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같이 있어주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어릴적부터 많이 바쁘셨기에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겨울의 추억하면 흔히들 있다는 크리스마스의 행복 또한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 생각이 드는 거지만 겨울을 좋아했던 것은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혼자 놀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한번 쯤은 어릴적이든 어른이 되어서든 겨울을 그리고 겨울에 내리는 눈을 그리고 겨울에 만드는 눈사람을 기억한다. 눈사람을 만드는 재료들은 저마다 각각이지만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와 어른을 구분하기 좋다고 한다. 눈이 내린다는 것을 좋아하면 어린아이고 눈이 내린다는 것을 싫어하면 어른. 예외적으로 어린아이가 아니면서 눈이 내리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연인도 있지만 대게 어른들은 싫어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눈을 딱히 싫어한다기 보다는 눈이 내려서 생기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꺼려지는 것 같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차가 달려야하는 길이 미끄러져 사고가 날 것을 걱정하게 되고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길이 미끄러져 넘어질 것을 걱정하게 되고 한껏 멋을 낸 사람에게는 눈이 내리면서 스타일이 망가질 것을 걱정하게 된다. 

언제부터 였을까... 겨울이 언제 올지 그리고 눈이 내릴지 무엇보다 눈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설레했던 것에서 벗어나 겨울이 와도 눈이 내려도 눈사람을 만들지 않게 되고 눈이 내리는 것을 꺼려지게 된 것 말이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면 입 벌리며 웃어대던 것에서 벗어나 눈이 닿는 순간 스윽하며 닦아버리게 되었을까... 사실은 언제부터인지도 잘 모르겠다. 기억해내려 한다고 해도 기억날 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찾고 싶었다. 눈이 내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 좋아하던 한 어린아이를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나는 찾는 것이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스노우맨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스노우맨 앨범 표지에는 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있는 그리고 주황색 코가 귀여운 눈사람과 자고 있다 금방 나온것 같이 잠옷차림을 한 어린 소년과 눈 내리는 밤을 함께 날아가는 그림이 있다. 파란 밤하늘에서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보다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세상은 시간이 멈춘것 마냥 조용하기만 하다. 이 점이 너무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눈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어린시절 때문에 말이다.

그림은 색연필로 채색을 했는데 원작이 동화라는 점이 돋보이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차갑고 시리지만 이 그림에서만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여기에서 색연필이 주는 느낌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표지의 재질은 종이인데 이 말을 듣고 오랫동안 간직하기에는 무리라면서 반감을 가질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그 반대이다.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우연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색연필처럼 종이이기에 그림이 따뜻해 보인다. 일반 CD처럼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스노우맨의 얼굴이 가득 차 있는 부클릿(앨범의 가사집같은 것)안은 나레이션의 대본과 일러스트가 있다. 나레이션의 대본만 있다면 심심해보였을 텐데 일러스트가 있으니 한편의 작은 동화책을 보는 것 같다. 재질은 종이로 되어있는데 표지의 종이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이것 역시 종이이기에 그림이 따뜻해 보인다. 맨 뒷장에는 워킹 인 디 에어(Walking In The Air)의 주제가의 가사와 일러스트가 있다. 이것 역시 부클릿과 같이 일러스트가 있으니 심심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부클릿과 같은 재질의 종이이다. 스노우맨의 왼손을 두손으로 붙잡고 스노우맨에게 가지 말라며 부탁하는 것 같은데 어린 소년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CD에는 스노우맨이 그려져 있고 CD를 꺼내려고 누르는 부분은 코의 부분처럼 되어있는데 의도적으로 한 건지 우연히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CD를 꺼내려고 누를때마다 스노우맨의 코를 누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발매 25주년 기념 특별판인 스노우맨 앨범은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는 레이몬드 브릭스(Raymond Briggs)의 원작으로 음악은 하워드 블레이크(Howard Blake)가 나레이션은 영화배우 제임스 네스빗(James Nesbitt)과 세인트 폴 성당 출신의 소프라노  피터 오티(Peter Auty)가 주제가에 참여했다.

스노우맨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공연에 관한 TV광고였다. 한 어린소년과 눈사람이 함께 무대위를 날아오르는 장면은 마법처럼 환상적이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 충분했다. 우습지만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다. 어릴적에 눈이 오면 만날 수 있던 나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보는 공연을 혼자 보러 간다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습다는 말이 나올지 몰라도 말이다. 이런것을 떠나서라도 문제는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한참 일이 바쁠 때라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음반으로 나와주지 나로서는 반가울 뿐이었다. 영상으로 직접 만나는 즐거움은 아쉽지만 음악으로 만나는 스노우맨을 참으로 그동안 잊고 지낸 동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더욱이 일을 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으니 나로서는 최상이었다.

듣는 내내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주는 음악과 동화가 있다는 게 새삼 느꼈고 이렇게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했다. 

주한 영국대사 마틴 유든(Martin Uden)은 스노우맨은 셰익스피어, 비틀즈, 해리포터를 잇는 영국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스노우맨은 영국을 상징하는 그리고 영국을 보여주는 문화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스노우맨을 공연으로 접한 사람이든 앨범으로 접한 사람이든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이 한다.

스노우맨을 떠올리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려 봤다. 우리나라에 스노우맨처럼 아이들의 꿈이 되어주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의 어릴적에 늘 함께하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둘리가 떠올랐다. 스노우맨이 서서히 녹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둘리가 엄마를 만났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엄마를 부르며 울 때 나 뿐만 아니라 둘리를 보는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노우맨이든 둘리든 어린 시절에 함께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든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든 만나게 되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하게되고 푸근해진다. 

나는 지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이렇게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스노우맨이 부모님에서 아이로 전해지는 영국처럼 이렇게 따뜻한 추억이 부모님에서 아이로 전해지길 바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일때의 행복함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번 겨울에 눈이 내리면 어릴적 만들던 눈사람을 만들어 봐야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언제나 함께 했던 것처럼 따뜻한 웃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지...

스노우맨을 만나고 싶다면 노우맨이 궁금하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