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자들. 혹은 죽었으나 돌아온 자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들은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외계인, 귀신, 연쇄살인마와 함께 오랫동안 공포영화의 단골이었다.

  나는 좀비영화를 꽤 좋아한다. 정통 좀비영화도 좋아하지만, 좀비가 희화화되어 나오는 B급 무비도 좋아한다. '새벽의 저주'를 변주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좀비가 좀 더 친근해진다. 늘 그려지는 모습과는 다른 좀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패하기 시작한 몸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으어으어의 알 수 없는 말만 중얼대고, 지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을 뜯어먹는 기존 좀비의 모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뱀파이어와 여타 귀신들에 비해 좀비는 외모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아서인지 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별로없다. 좀비물의 주 주인공은 좀비가 아니라 좀비가 되고 싶지 않은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래서 <웜 바디스>가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름 없는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홀트와 존 말코비치가 등장하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로 한 것은 그런 재미를 영화사에서도 알아봤기 때문일 것이다(니콜라스 홀트가 주인공 좀비라면 관객들도 좀비의 매력을 한껏 알아차리겠지. ㅋ).

  좀비들이 사람의 뇌를 먹으면서 뇌의 주인의 기억을 볼 수 있다든가, 그 기억에 따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애정을 갖는다든가, 알고 보면 좀비가 좀 더 인간적이라든가 하는 설정들은 재미있다. 이미 초반부터 사색하고 말하는 좀비 R의 모습은 좀비라기보다는 철학자같다. 오히려 갇힌 공간에 갇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힘쓰지 않고 안주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모습은 오히려 패배자처럼 보인다.

 

  어떻게보면 소년의 기억을 이어받은 R과 소년이 사랑하던 소녀-그리고 변화를 꿈꾸는 줄리의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러브스토리보다는 좀비라는 캐릭터의 새로운 발견을 만난 것 같아 즐거웠다.

  그건 그렇고, 좀비가 다시 살아있는 사람이 되면-피도 흘리고 상처도 생기고 낫고 하는- 이미 부패한 몸의 부분은 어떻게 되나?

 

 

씨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