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뒷표지의 '한국 여객선'이란 단어와 '여성'이란 단어 탓에 내 마음대로 은수라는 여성을 생각해버렸다. 이 책에서 제목으로 쓰인 '은수(恩讐)'는 우리나라에선 잘 쓰이지 않는 단어로 은혜와 복수를 뜻하는 단어다. 제목 자체에 모든 실마리가 들어있었던 셈이다. 무심결에 은수가 이름이라고 생각한 나는 나중에서야 한자를 보고, 일본어 원서 제목을 보고서야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다.
 <속죄의 소나타>에 이어 두번째로 미코시마 레이지가 등장하는 책을 읽었는데 지난번 책에서 본 미코시마와는 다른 느낌이어서 조금 놀랐다. 악과 선을 오가는 변호라는 느낌은 그대로이지만 이렇게까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은수의 레퀴엠>에서 다루는 사건의 피의자가 자신을 예전에 교화시킨 이나미 교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변호를 통한 이익을 전혀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고. 미코시마가 이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일련의 사건 과정과 그 배경을 되짚는 동안 이제껏 몰랐던 이나미 교관의 사생활을 알게 되면서 자신에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그가 자신의 가정에선 어떤 사람이었는지, 의료소년원 사건 이후 어떤 신념으로 살아왔는지를 알게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그의 이런저런 심정들은 예전에 차갑기만 했던 미코시마 캐릭터에 인간적인 면을 살짝 더해준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변호를 해주는 변호사가 있을까 싶다. 의뢰인이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형을 받겠다는데도 무죄를 주장하고 그를 입증하기 위해 의뢰인이 숨기고자 하는 것도 꺼내놓는다. 의뢰인의 이익을 제일로 한다는 기본 원칙에는 너무나도 충실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 처절해 보인다.
 지난번 <속죄의 소나타>의 주 내용이 소년범과 범죄자의 속죄와 교화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은수의 레퀴엠>에서의 주 내용은 긴급 피난에 대한 점이었다. 정당방위나 특정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배반하는 일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긴급 피난이라고 해서 무조건 죄를 물을 수 없는가, 심판받지 않고 형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가 등등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특히 블루오션호의 구명조끼 강탈 사건 이후 드러난 도치노의 행태를 보면 긴급 피난이라는 것이 얼마나 규정하기 어려운지도 알 수 있었다.

씨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