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의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요청에 그 아이가 누군지도 묻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독특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이 일을 계기로 태어난 삐삐라는 여자아이는 전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된다. 주근깨 난 얼굴에 억센 머리결, 힘이 쎄고 엉뚱한, 줄무의 스타킹을 신은 여자아이. 그 아이를 탄생시킨 사람이 바로 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다.

나를 여기에 내려주고 이모랑 둘만 타고 가.  내가 히치하이크에 성공해서 네 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

  카티의 여행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인 <바다 건너 히치하이크>는  카티의 미국여행이야기다.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22살의 카티는 이제껏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아가씨다. 미국을 다녀온 다음 자랑질을 해대는 얀의 이야기에 자극을 받은 그녀는 미국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극구 반대하는 이모 탓에 이모라는 혹을 달고 여행하게 되지만 그 여행에서 카티와 이모는 잠깐 스치는 인연과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겨우 미국 여행에 대한 것이 무슨 이야기가 될까 싶은 우려가 든다면, 이 책의 출판 시기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겨우 1950년에 쓰여졌다. 우리나라가 광복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6.25가 발발하기 조금 전인 그때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록 스웨덴이라는 한국과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건 미국 여행이 왜 그리 큰 소재가 되는지 짐작할만하다.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며 놀라워하는 카티의 시선은 지금의 여행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물론 미국의 대도시가 크게 스타일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문체와 어투가 촌스럽다는 생각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으로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를 접했을 때의 경이로움과 놀라움. 그리고 유명 문화유산과 유명 건축물을 실제로 접하는 것에의 설렘. 혼자 떠난 여행인지라 생각할 시간도 많고, 시간의 여유도 많았던 여행이었다(카티처럼 이모와 함께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 후로도 여행을 가끔 가곤 하지만 그 첫 여행의 감흥은 여전히 놀라움과 새로움, 설렘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 카티도 여행을 하며 그런 설렘을 느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카티가 미국과 자신이 사는 스톡홀름을 비교하며 이야기할 때마다 난 미국보다는 스웨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왠지 익숙한 느낌인데 반헤 스웨덴은 카티의 표현대로라면 참 조용하고 평온한 작은 나라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