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스즈키 선사는 미국 선(禪) 문화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라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한 분인데, 책에도 나오지만 그는 법문을 통해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초심(初心)을 자주 언급했다.

『여러분의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든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

어떤 새로운 생활이나 관계, 그리고 계획 등이 시작 될 때 우리는 늘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늘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는 아니다. 마음은 긍정과 부정을 오가며, 성공과 실패를 그려보고, 그에 따른 행복과 절망의 맛을 미리 맛보기 위해 애를 쓴다. 거기에다가 과거의 경험까지 들춰가며 현재를 놓친다.

그렇게 처음에 비어있던 마음이 온갖 것으로 채워지게 되면 우린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보고자 하자면 늘 새롭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는 무엇을 얻었다’는 생각이 없지요.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모두 우리의 광대한 마음을 제한합니다. 무엇을 성취했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 그것이 진정으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라야 진정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자비롭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요.』

그냥 저렇게만 보면 도덕책을 읽는 듯 하겠지만, 수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상 같은 것을 해 본 분이라면 저것이 단순히 도덕률을 논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피상적으로 느꼈지만 명상을 꾸준히 해 보게 된 뒤로 아주 쉽게 느끼게 된 것이 마음이 한 시도 가만히 있을 때가 정말 없구나, 이다.

그냥 눈을 감고 그냥 조용히 앉아만 있는 데도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하염없다.

그런데 얼마 전 느끼게 된 것이 생각이 없는 평화로움을 잠시라도 경험하기 위해 하는 것이 명상이지 싶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막말로 무념무위를 경험 해 보는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이뤄진 것이 진정 내가 아님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해 보게 되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그래서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를 항상 유일한 질문으로 남기고, 묻고 하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선(禪)에 대한 바른 수행, 바른 태도, 바른 이해, 이렇게 3부로 엮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여느 불교관련 서적과 다를 바 없이 보일 수 있겠으나, 이런 종류의 책을 대할 때 항상 느끼게 되듯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이 새롭게 정화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을 이 책 또한 발휘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정화란 세상에 대해 무언가 정의 내리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맞이하여 받아들이려고 하는 어떤 순수한 존재를 말한다.

『푸른 산은 흰 구름의 아버지

흰 구름은 푸른 산의 아들

온종일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서로 걸리지 않네.

흰 구름은 늘 흰 구름

푸른 산은 늘 푸른 산일 뿐.

(……) 푸른 산과 흰 구름은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푸른 산이 흰 구름을 귀찮게 하지도 않고, 흰 구름이 푸른 산을 성가시게 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독립적입니다. 하지만 서로 의존적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좌선을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장 먼저 선(禪) 수행이나 명상에 있어서 조차 무언가를 얻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전하는 스즈키 선사의 충고들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읽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나마 무(無) 혹은 공(空)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