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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은 몇 년 전에 신문에 그림과 함께 연재했던 글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병종'은 화가이자 문필가이고 저자의 부인은 '장미빛 인생'을 지은 소설가 '정미경'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신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어떻게 그리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 재주를 타고 났는지...

요즘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바쁜 와중에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라고 할까 그런 것을 일깨워 준다. 가을날 저녁에 퍼지는 저녁 연기라고나 할까 그런 예술가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는 그 흔적을 따라 자연스럽게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되고.

1,2권은 주로 국내에서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찾았고 이번에 나온 3권은 해외에서 찾은 우리 예술가들의 혼이다. 물론 그 중에는 전혜린, 윤이상, 이응로, 이미륵, 최승희 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많이 접한 인물도 있고, 최건이나 김염처럼 아주 생소한 사람도 있다.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혹은 살아있건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이건 그들은 모두 우리 민족이고 우리의 예술혼을 이국에서 불태운 사람들이다. 어쩌면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그 흔적을 따라 어려운 길을 여행한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나는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인물에게 더 시선을 준다.

'빅토르 최'는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미술 공부를 하였으나 저항시인으로 변모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록 가수가 된사람이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노래하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아직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그를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답답하고 우울한 러시아 거리에서 그는 저항의 음유시인으로 살아 있다고 한다.

내게 한 모금의 물을

한 모금의 자유를

거리의 제단마다 타오르는 불길

꽃 대신 타오르는 불길

목이 말라

내게 한 모금의 자유

한 모금의 물

그는 '한 모금의 물' 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여전히 목이 마른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는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인물에 '김염'이라는 인물이 있다고 한다. 나는 금시초문이라서 더 호기심을 갖고 책을 읽었다. 책에 나오는 사진만 보아도 걸출한 미남이다. 아니 잘 생겼다는 사실보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영화배우로서 자신의 삶에 투철했나 하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익히 그 당시 무용가 최승희나 독립운동가 김산이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니...

김염은 당대 최고 명문가 출신인데 의사였던 부친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것이 알려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자 7형제들이 산산이 흩어졌다고 한

다. 친척집에 살던 김염은 그로 이해 어두운 시절을 보내게 되고 배우가 되기를 희망했는데 고모부인 김규식 박사의 노여움을 사서 상하이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 후로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로 배우가 되었는데 자의식이 강하고 사상이 투철한 배우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작품만 골라서 했을 정도라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상하이에는 그의 부인이 살아 있는데 우리는 이제야 겨우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인물,한국과 중국 관계로 인해 서울을 다시 밟지 못 하고 결국 세상을 뜬 비운의 배우,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고 인기를 독차지했던 배우, 그러면서도 우리에게서 잊혀진 배우... 아직도 중국에서는 노년층 인구에 회자되는 이름. 우리도 그 이름' 김염'을 불러 그 혼을 추모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는 정유재란 당시 끌려간 한국인 도공에 의해서 전해졌다고 한다. 아리타에는 지금도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모여서 우리의 혼이 들어간 도자기를 빚고 있단다. 이삼평 13대. 이삼평가는 아리타에서 4백년 동안 도자기만을 빚으며 가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 백자의 순수함과 그윽함이 스며 있는 작품을 빚으며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떠나온 고향 한국을 생각했을까? 충남 공주로 짐작된다는 이삼평의 고향은 계룡산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그곳을 돌아보며 이삼평 13대 후손은 무엇을 느꼈을까? 어쩌면 금강의 유장한 물결과 계룡산의 아늑한 품이 백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천과 여주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그 맥이 보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빠르고 편하고 쉬운 것을 찾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더 크다는 것조차 잊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