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창업에서부터 현대까지 숨 가쁘게 돌아왔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우리가 얼마만큼 깊이와 멋을 잃고 살고 있는지 새삼스레 느껴진다.

 

 발로 뛰어 쓴 책을 읽고 보니 저자에게 특히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두어 번 돌아본 서촌을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왕산과 수성동 게곡을 배경으로 한 서촌에 깃든 역사와 거쳐간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멋과 풍류, 역사의 소용돌이가 한 손에 잡힐 듯하다.

경복궁 가까이에 있었기에 궁과 관련된 인물들이 조선 전기에는 많이 살았고,

중기로 가면 장동 김씨 등 사대부들이 둥지를 튼다.

그러다가 조서 후기로 들어서면 물질과 지적인 능력을 가진 중인들이 터전을 잡고 송석원시사와 같은 모임을 만들어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완용과 윤덕영 같은 인물들에 의해 주변이 초토화되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서촌 속살 깊이 간직한 풍류까지 없애지는 못 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역사의 풍랑에 쓸려 비운의 삶을 산 서촌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시대는 장소와 인물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변하고 사라져가는 것이 어디 서촌뿐이랴.

다만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져 그리고 지역을 관장하는 지자체나 정부의 인식이 달라져 그나마 남은 역사의 흔적들이 잘 관리되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전해주는 공간으로 거듭 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