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장편소설 '흑산(黑山)'을 읽었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을 다룬 소설이다.

정약전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정약전의 형제들 - 순교한 정약종과 유배간 정약용 -

그리고 정약전의 조카사위인 황사영까지도 아우른다.

물론 세세하게 인물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가 민중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멀리서 관찰하는 것처럼 그려나간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도를 갖고 그렸다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의 삶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작품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그랬듯이

힘없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저 안쓰럽고 슬픈 마음으로 그들을 보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그에게 그런 樂이나마 없었다면 유배생활이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책을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대화가 통할 만한 인물도 없는 척박한 섬 흑산도에서 창대라는 청년을 만남으로써

그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물고기들의 생태와 생명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결국 '자산어보'라는 책을 남기게 된다.

흑산도에서 생을 마감한 정약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지만.

 

- 나는 흑산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살려 한다.

- 같지 않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_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

 

창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정약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유배생활의 막막함을 이겨나가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픈 표현이다.

 

 책을 읽으며 김훈 특유의 문체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로 나 또한 세상을 보았다.

낮은 자세로, 그리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잠시나마 흑산, 아니 정약전이 자산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던 바다에 눈길을 주고 싶다.

그리고 힘겹게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며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