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소설 '은교'를 읽었다. 작가 본인이 '촐라체'와 '고산자'를 잇는 삼부작이라고 일컫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무엇이 그에게 이런 소설을 쓰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은교는 열일곱 살 먹은 여고생이다. 우연히 老詩人 이적요가 홀로 사는 집에 일을 도와주기 위해 다니게 된 소녀이다. 시인 이적요는 혼자 살면서 제자라고 자처하는 작가 서지우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은교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경쟁적인 관계로 변한다. 물론 누가 은교에게 흑심을 품고 있든 그건 원조교제와 다르지 않지만 두 사람은 말이 아닌 눈빛으로 서로를 탐색하며 으르렁거린다.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 발랄하고 청순한 여학생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비록 그래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인 마음이 있지만 그들은 본능적인 욕망을 주체할 수 없다.

 

 결국 시인은 서지우와 은교의 관계 장면을 목격한 후 서지우를 우연을 가장해 죽게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음모를 알아차리지만 서지우는 교통사고로 죽고, 그를 따라 시름시름 당뇨 합병증 치료를 거부한 후 시인도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남긴 일기와 비망록을 따라가며 두 사람의 감정 상태와 사건이 전개되는데...

 

 여기에서 작가는 老시인의 욕망에 주목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그런 문제에 초연했다고 생각하는 시인이 어린 소녀를 통해 다시 육체적 욕망에 눈뜨는 과정은 소설이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더군다나 요즘은 나이 70이라고 해도 전혀 사회 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에서는 그런 관계에 대해 손가락질하겠지만 두 사람이 동의를 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을까?

 

 가끔 연예인들 중에 연인 사이에 나이차가 심한 경우 일반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나도 20대에 그런 일을 접하면 '순도둑놈'이라는 표현을 쓰며 비난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자신의 선택일 뿐 누구도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엄연히 성인인데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을 제삼자가 무슨 권리로 비난하겠는가. 그만한 열정이 있다는 것도 젊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일까? 물론 책에서 은교는 미성년자라는 점이 문제가 되겠지만.

 

 작가의 말에 독자가 이 작품을 밤에만 읽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한번 손에 잡으니 시인 이적요와 서지우의 심리를 따라가는 길이 외길이었다. 두 남자가 서로 사랑하고 한 여자를 놓고 경쟁하는 장면은 이 작품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어쩐지 이 소설에서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듯 싶다. 어쩌면 소녀를 날아갈까 깨질까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한편 육체적으로 갈망하는 노시인의 솔직한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와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먹어도 사람의 감정은 변하지 않겠지. 노년에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죽음으로 마감을 하지만 은교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