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혜인여자고등학교 2학년 4반 황혜정 (여)

“스텝 바이 스텝!”

지금도 개천가에서 섀도복싱을 하며 뛰고 있을 것 같은 완득이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완득이는 나와 같은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나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특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는 그 무엇’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완득이에게 그 무엇은 바로 킥복싱이다. 어쩌면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 마치 삶의 목표인 양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완득이와 같은 고등학생인 나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 젖어가는 듯하다. 틀에 구워진 붕어빵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책을 펴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꿈을 꾼다. 그리고 붕어빵이 그 틀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잘라내지듯이 우리도 그 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다. 알게 모르게 사회가 나에게 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나의 희망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들 하면서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영어 단어 한 개나 더 외우라는 핀잔을 준다. 그리고 내 옆을 둘러보면 모두 대학 입시에 한창이다. 그래서 나는 답을 얻지 못한 채로 다시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각을 멈춘다. 나는 이렇게 정해진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데, 완득이는 세상과 온 몸으로 부딪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완득이가 나같은 온실의 화초는 절대 알지 못할 생활 감각과 인간미,낙천성을 가지게 된 데에는 완득이의 담임인 이동주 선생님의 활약이 크다. 이 책의 처음에서 제발 죽여달라는 완득이의 간절한 기도의 주인공인 ‘똥주’는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끈덕지게 등장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욕을 서슴없이 하고, 수급 대상인 완득이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 같아 나도 당장 완득이 옆으로 가서 같이 기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완득이가 그를 업고 죽지말라면서 골목길을 뛰어갈 때, 나도 모르게 내 마음도 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정말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똥주’이다. 특히,부잣집의 외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 완득이의 옆 집 옥탑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빛나 보였다. 오히려 속으로는 칼을 품고 겉으로는 청렴하는 척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멋있었다. 내가 본 ‘똥주’는 다른 어떤 어른들보다 인간적인 어른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있는 완득이를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그만의 방법으로 이끌어 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인가 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어했던 선생님이지만 완득이도 차츰 선생님의 본심을 알게 되고, 어느덧 선생님과 완득이의 가족은 하나의 테두리로 모여들게 된다.

완득이의 가족은 난장이 아버지와 ‘저쪽’사람인 어머니 그리고 어른의 몸과 아이의 지능을 가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이다. 말하자면 완득이는 사회의 소수자이다. 그것도 완득이 가족은 소수자 중에 소수자이다. 결국 이 책은 장애인 이주 노동자, 소외받고 있는 이웃이라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완득이를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면 한창 예민한 시기인데도 완득이는 이런 상황들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밀어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그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것들과 어느 순간 함께하게 되고, 결국 이겨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완득이’는 우리 사회의 이주 노동자 문제, 입시가 목적인 학교 교육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덮는 순간 ‘유쾌함’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완득이의 시원하고 거칠 것 없는 말투와 행동들이 나에게 옮았나보다. 그냥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도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