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을 선도하는 한의학

한의학을 과학화한다는 측면은 서양의학과의 융합을 모색하는 단계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의학의 과학화가 고유의 한의학적 색깔을 희석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결국 한의학은 전체적인 시각에 따른 진단보다는 개체적이고 분석적인 서양의학의 진단에 경도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에서 이런 한의학의 전체적 입장을 옹호하는 석학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데니스 노블 박사는 체질에 따라 치료가 되는 맞춤의학이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같은 약이라도 사람마다 효능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이는 소화를 잘 시키고 어떤 이는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한다. 또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어떤 이는 감기에 걸리고 어떤 이는 걸리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상황이라는 환경적인 요소도 있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자신의 몸 상태다. 이 몸 상태는 몸 전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코나 폐 같은 한정된 장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코와 폐라는 장기를 놓고 약으로 치료하려고 하나 한의학은 주변 환경과 환자의 몸 상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치료한다. 그는 심장을 스스로 뛰게 하는 신경세포를 세계최초로 발견한 석학으로, 우리 몸의 장기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몸 전체 상태를 관장한다고 한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했을까?

“시스템 생물학과 한국의 한의학은 통합과 융합의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한다는 점을 볼 때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인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가진 시스템 생물학 연구를 하고 있다. 시스템 생물학은 생명현상이 DNA뿐만 아니라 세포, 조직 등 다양한 인체 구성인자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개념이다. 이는 유전물질인 DNA를 생명의 지휘자로 보고 유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의 비밀을 연구하는 기존 생물학과는 다른 점이 특징이다. 노블 교수는 환원주의에 고착되지 않는 통합적인 생물학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들 중 어느 것이 활성화되고 어느 것이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가를 누가 결정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환원주의적 관점은 한계가 있죠.”

환원주의란 생명현상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 최소단위인 유전자에서부터 단백질촣세포내 소기관촣세포촣조직촣기관촣개체 등의 순서로 작은 것의 작용을 통해 큰 것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노블 교수는 최소 단위로 나누는 인체의 이해는 별 도움이 안 되며 그 최소 단위의 세포가 모여서 결합되어 있는 조직간의 상호 작용이 우리 인체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의학을 높은 통찰력을 가진 학문이라고 평가한다.

한의학의 약재는 여러 성분으로 구성되어진 복합제재인데 그러한 복합 작용을 이용하여 여러 병을 치료하는 개념이 시스템 생물학의 기본 사고와 부합한다는 것.

데니스 노블 박사는 서양의학의 한계점을 동양의학의 전체주의적 시각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장기는 따로 따로 작동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거대한 자연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상, 음양오행. 수천 년간 의학뿐 아니라 정신을 지배해 온 동양의 경험이다. 한의학은 이 경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양의학의 분석적 관점에서 근거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체의 상생, 상극의 원리를 생병리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우리 앞에 있는 동의보감은 무병장수의 인류의 염원을  실현할 거대한 지식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 처방은 오늘날에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동의보감이 오늘날 한의학이 탄생하게 된 뿌리라고 한다. 지금 임상에서도 동의보감 처방을 많이 따른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한의학 임상에 활용되고 있는 동의보감. 물론 동의보감에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의학서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처방도 있다. 투명인간이 되는 법과 원앙새 고기를 먹으면 금슬이 좋아진다든가 또 목에 가시가 걸렸을 때 주문을 외워 빼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의학의 시점에서 아시아의 과거 의학에 대한 충분한 분석, 또는 그에 대한 연구가 충분했는지 우선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의학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좀 더 필요하다. 동양의학의 약재에 대해 수천 년간 사용되어 왔으며 이미 인체에 대해 부작용이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면 그 당시 의학자들이 현대의학처럼 무작위 통제연구를 통한 결과를 분석하지 않고도 인체를 이해하고, 약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의학에서 과학적으로는 적용할 수 없는 동양의학을 서양의 잣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동양의학적 잣대를 적용하거나 동양의학적인 분석기법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시의 의학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의학이 무해함을 이해하고 인체에 적용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잊혀진 의학 공식과 치료법들을 제대로 찾아내 현대에서도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일일 것이다. 현대의학의 난제가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천년 이상 쌓인 동양의학의 정수만을 뽑아 놓은 동의보감은 이 난제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