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제3의 신경 경락의 존재를 밝힌다

동의보감은 정기신(精氣神)에 장수의 비밀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독특한 인체도를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형장부도(身形腑圖)인데 오장육부와 양생을 위해 기를 수련할 때 정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인 삼관대가 그려져 있다. 

나는 이 척추에 그려져 있는 삼관(옥침관, 녹려관, 미려관)이 일종의 경락이라고 생각한다. 동의보감의 곳곳에 이 경락을 이용한 처방이 보이는데, 인체의 내부를 다룬 내경(內景) 편에서는 일시적으로 목이 쉬어 말을 못할 경우 족소음경맥(足少陰經脈)에 침을 놓으라고 한다.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은 탁한 기운이 위로 치밀어 혀쪽으로 몰린 것인데, 족소음경맥은 혀와 연결되어 있어 이 혈맥의 좌우를 찔러 나쁜 피를 내보내면 좋지 않은 기가 빠져나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침구 편에는 12경맥과 기경팔맥, 12경근 등 여러 경락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다. 음양오행을 비롯해 경락의 세계까지 펼쳐지는 동의보감은 역대의방이란 목록을 적고 186종의 의서를 인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의서들은 황제내경의 영추소문을 필두로 장중경의 상한론, 편작이 지은 난경 등 당시 동양의학의 정수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의서들 역시 경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현대까지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예부터 침은 근육통증, 염증치료에 아주 탁월한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침은 혈자리, 즉 경락을 자극해서 치료하는 의술이다. 그렇다면 이 경락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경락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의학계에서는 이미 수천 년간 사람을 대상으로 치료해왔던 경락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락은 특히 침구분야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반복적인 시술을 통해 그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은 현대의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육안으로 확인 되거나 과학적으로 입증이 재현된 바가 없다. 나는 과학적으로 경락의 실체를 알아보고 싶었다. 특히 CT, MRI 등 영상의학의 힘을 빌려 경락의 유무를 알아내고 싶었다. 거기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나는 우연히 국내 한 병원에서 간접적이나마 경락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가톨릭 의대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와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원장 등이 공동 연구로 양릉천이라는 혈자리에 꽂는 침술이 뇌졸중 치료에 효과적이란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한방에서는 뇌 중풍으로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면 침을 놓는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는 침술 효과를 반신반의한다. 팔다리에 침을 놓는다고 뇌 기능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톨릭 의대 신경외과팀과 동서한방병원팀은 한방의 중풍 치료 혈자리인 양릉천에 침을 놓았을때 fMRI를 이용하여 뇌의 운동피질이 활성화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았다.

동서한방병원 박세진 부원장은 양릉천 혈이 포함된 족소양담경이라는 경락은 눈에서 시작해서 머리의 측면을 거쳐 인체 측면을 순행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에도 작용이 되지만 팔회혈이라는 혈을 자극한다고 한다. 운동 신경을 담당하고 있는 팔회혈 중 하나인 근회혈이 바로 양릉천 혈인데, 예부터 운동장애나 여러 가지 근육질환을 치료한다고 알려져 왔으며 특히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될 때 곡지혈과 함께 쓰이는 대표적인 치료혈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 침구 편에 보면 양릉천은 근회혈로 근육관련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나온다. 양릉천의 혈자리는 무릎 바깥쪽에 위치하는데 이 혈의 옆에 있는 뼈가 언덕처럼 튀어나와 있어 양릉천이라 한다고 한다. 이 혈은 간과 담의 열을 빼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서 관절을 잘 움직이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 

양릉천을 침으로 자극하면 족소양담경이라는 경락을 따라 옆머리와 눈, 귀, 열병,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동의보감은 적고 있다. 아마도 침자극이 뇌신경으로 전달되어 근육과 척수, 뇌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뇌는 반대편 인체를 관장하기 때문에 동의보감에서도 오른쪽에 마비가 오면 왼쪽 양릉천에 침을 놓도록 했다. 공동 연구팀은 피실험자 2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양릉천과 양릉천 이외의 혈자리에 침을 꽂고 fMRI로 뇌 운동피질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연구팀은 양릉천 자극 시 뇌 운동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경락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가톨릭대학교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는 경락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존재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