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를 읽으면서 데미안을 봤을 때 신선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권선징악, 흑백논리만을 배워왔던 나에게 당시 데미안이 주는 새로운 사고와 시각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데미안은 흔히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악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을 처음으로 내게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선도 악도 아닌 혼합체, 규정할 수 없는 것, 헤세는 그것을 선과 악을 향해 날아 가는 새 아브락사스라 이름 지었다.  

존재론, 자본주의. 우리는 시대가 선택한 이 큰 두 개의 이름아래 산다. 학교에서는 존재의 비밀을 연구하고 깨우칠 수 있는 도구와 학문을 공부한다. 대학은 경제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즉,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더 이상 인간을 위한 공부가 아닌, 돈을 위한 공부를 한다. 전공과목, 자격증, 고시준비, 너무 흔하고 익숙한 단어들이 아닌가? 

이런 세상에, 시와 소설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며, 음악에 탐닉하고 미술작품을 열심히 바라 보는 사람이 있으면 집이 유복하여 팔자 좋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호기심 많고 자존심이 강한 이단아 정도로 본다.  우리의 정치, 경제 현실을 바라보면 필연적 결과처럼 보이지만 헤세가 말한대로 현실을 뛰어넘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현실의 알을 깰 필요가 있다. 헤세는 그 방법으로 ’화합’을 말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상과 세상의 조화, 이성과 감성의 조화, 예술과 학문의 조화, 쾌락과 절제의 조화, 종교와 삶의 조화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삶의 균형, 생각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 말한다. 또 어떻게 불완전한 세상과 인생을 바라봐야하는지를 말한다.  두 주인공의 서로의 세계에 대한 존경과 배려, 감동적인 사랑과 우정은  아름다운 영화같은 그림이다. 

전쟁터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특히 뭔가를 이룬, 성공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싶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가장 소중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