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나는 역사 전공자를 역사 선생님 이외에는 만나본 적이 없으므로 (선생님께서는 섭섭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상 왜 역사 공부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 교육 받은 적이 없다라고 얘기해야겠다. 그래서, 학생때는 통상 역사라하면 의례히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 중대사가 그 핵심이고 부수적으로 근대사가 추가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 역사는 재미 없는 과목이었고 공부를 하는 목적은 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역사는 우리의 모든 생활의 뿌리가 되는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의 역사의식은 경제적 현실에 대한 인식의 노력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를테면 그 출발점이 되는 현실적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집을 언제쯤 사야할 것인가? 집 값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변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 이외의 많은 분야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실제 집 값을 구성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건설회사의 원가와 마진 그리고 구매자의 기회비용과 그 집의 미래가치가 있을 것이고 공급자와 수요자의 심리적 요인이 호가와 매매가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 정책도 중요하고, 해외투자자의 동향과 국내산업의 추세, 인구 분포와 증감 추세, 대중의 투자, 소비 철학과 트렌드등도 있다. 

역사와 관련되는 부분만 보면, 경제는 반드시 정치와 연결되어 있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저서를  ’정치 경제학’이라고 이름 지었다) 정치는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부동산 가격은 국가 정책에 따라 등락을 하고 소비, 투자 심리 역시 국가 정책을 떠나 단독으로 논의할 수 없다. 역사는 사회, 문화, 철학, 종교등에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의 경제는 ’국제 경제’이므로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그 국제 정치의 이해에는 세계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향후 10년동안 서울시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겠는가? 세금제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들에 대해 우리의 막연한 희망사항을 말하는게 아니라 각각의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따르는 의미있는 답변을 할 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현대사, 근대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훨씬 높혀줄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카가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하는 것들이다. 요약한다면, ’역사란 다양한 사관과 가치을 통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하여 의미있는 해결책들을 도출하여 진보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어렵다.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번역과 편집상의 문제가 많다. 오타도 보이고, 주인 없는 대명사, 주어가 없는 문장,  맞지 않는 문단 배열도 이해를 방해한다. 직역과 의역의 혼용도 이해를 어렵게 한다. 책이 내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번역자를 포함하여 감수자와 편집자도 ’프로정신’을 발휘해야할 것이다. 

둘째, 저자의 너무 많은 인용, 때론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인용, 더 쉬운 예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인용을 하고 그 인용들에 대한 가치 해석이 주제로의 접근을 어렵게한다. 이런 점은 저자의 현학적인 면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철학서이지만 일종의 비평서라는 생각도 들게한다. 역사 철학자로서의 카의 학습량은 실로 존경할만 하다. 그러나 그의 인용은 비전공자에게는 다가서기 힘든 내용이다. 이 책이 1961년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고 하는데, 전공자가 아니면 상당히 어려웠을 강의였을거라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런 한국어 독해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카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견해는 주목할 만하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주목적일 것이다. 또한 끝까지 읽는 독자는 그 마지막 장까지 카의 감동스런 철학과 학자로서의 진정한 용기까지도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88세대를 없애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