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는 자아가 불안에 대처할 때 작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서 자아방어기제라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 방어기제 중에 승화라는 개념이 있다. 본능적 욕구나 참기 어려운 충동에너지를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사용하는 가장 건전하고 건설적인 방어기제가 승화이다. 성적 욕망을 예술로 승화하거나 살인충동을 외과의사로, 폭력적 공격적 충동을 권투선수로 승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을 읽고 난 감상문치곤 서두를 거창하게 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승화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기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김서령이라는 작가를 전혀 모르지만 소설집 속의 모든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끊임없는 이별에 대한 천착이 고집스러워 보이면서도 풍겨 나오는 무채색의 고통이 전달되면서 숨이 막혀왔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수단이 없었다면 소설 하나하나에 배인 작가의 쓸쓸함과 무감동의 근원적인 고통을 도대체 어떻게 승화해냈을지 걱정될 정도로...

 

  원색의 유치함이 어울리는 봄날의 찬란함을 느껴볼 새도 없이 봄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이 책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붉거나 하얗고, 노랗거나 연한 빛의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손안의 책세상은 텅 빈 공허함과 회색의 우울 빛으로 가득한 이별의 향연이니 이 간극을 어쩌지 못해 먹먹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10대에서 20대의 청춘을 함께해온 남자친구와의 이별, 감정적 이별을 자살과 죽음이라는 현실의 이별로 만들어 놓고 빚만 남긴 체 떠나간 남편, 왜 멀어졌는지 모르게 다른 여인에게 날아간 무능력했던 남자 L, 자신의 영달을 위해 오래전 죽어 잊혀졌던 남자친구와 각색된 조우를 하며 비애에 빠지는 여인, 어처구니없는 사인에 의한 아들과 오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 선본지 6개월만에 결혼하여 부부로서의 애정과 존경이 생기기도 전에 죽어버린 남편으로 인해 Deep depression(깊은 우울)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공감하지 못해 내면의 방황을 겪고있는 여인까지... 소설속엔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이별 이야기들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도대체 이 많은 이별로의 천착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해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1974년생인 작가. 소위 말하는 386세대로서의 시대적 지위도 부여받지 못하고, 신세대·X세대·N세대로 불리우며 시대적 아이콘으로 조명 받아 보지도 못했던 불행한 세대. 그 어디에도 소속돼지 못한 낀세대로서 70년대 초·중반생들이 느꼈던 시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고통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깊은 공허함과 우울함을 끌어안은 체로... 그러한 근원적 허무함과 고통을 누구와도 교류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 타인들과 정서적, 물리적 이별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반복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삶 일지언정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며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안쓰러움이 소설 속 곳곳에서 보여지니 말이다. S시로 가는 ‘나’에게서,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과거와 이별하고 현재를 살아가려는 ‘그녀’에게서, 한 남자를 사랑한 ‘지영’과 ‘나’의 관계의 변화 속에서....문득문득 보이는 주인공들의 삶은 결코 현재를 방치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