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가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한 것은 정의의 침묵이다.』

 

  미국 동부 끝에 위치한 인공의 섬도시, 바이슬 시티! 미정부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범죄조직을 인위적으로 모아놓은 도시. 시민들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 존재하는 곳. 50년간 바이슬이라는 정체불명의 창조자와 그의 비호하에 범죄조직과 시당국의 밀착관계 속에 온갖 비리와 범죄가 난무하는 바로 그곳, 바이슬 시티에 개혁파가 시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진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시장의 총격과 사망, 그로인해 다시 시작된 시장 선거 정국...

 

  어느 날, 보스턴에 사는 데미안에게 옛 친구 라일리의 편지 한 통이 전달된다. 바이슬에서의 혁명운동의 실패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며 데미안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편지 내용은, 지난 시절 의기투합하여 도시의 정의를 외쳤던 데미안에게 무언의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동료인 마이카와 함께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바이슬로 잠입하여, 개혁파를 하나씩 만나 포섭해 가며 변화의 끈을 엮어가기 시작한다. 더불어 독재정치의 정당화를 위한 세뇌교육의 산실인 학교를 바꾸기 위해 시드니 제너라는 15세 소년을 끌어들여 학생과 학부모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개혁운동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거대 독재 사회인 바이슬을 서서히 혁명의 열기 속으로 몰아가고 변화를 일구어 내는지 소설은 흡인력 있게 보여준다.

 

  사실 소설은 전체적인 스토리의 개연성이 확연히 떨어짐으로써, 상황이나 인물 설정이 비현실적이고, 인물간 관계가 매우 허술하게 연결되며, 사건 전개와 연결이 우연의 연속과 지나친 단순함으로 인해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데미안이 시드니 제너와의 첫만남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이나, 개혁파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 제닌 마이어스쇼와 연계된 우연함 등등 꼽아 보자면 부족한 부분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특히 소설의 전체적인 틀은「1984」를 모방한 듯 하나,「1984」가 그려낸 전체주의국가의 치밀한 감시체제에 대한 묘사를 따라잡지 못해 독재정권에 대한 묘사가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그친 것 같아 안타까움도 자아낸다. 결정적으로, 혁명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희생의 불가피성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맞는 어린 소년들의 죽음과 그 의미가 미화되는 점은 결코 찬성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매료되고 말았다. 비단, 15세 어린 소녀가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써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바이슬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를 상상해내고, 그 가상의 도시를 통해 국가가, 사회가 가져야 하는 정의는 무엇이며 그 정의를 위해 시민들은 어떠한 의식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지금의 미래세대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순수한 아이의 눈에 비친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실체를 지배당의 모임 속에 포착해내고, 부모세대를 일터로 내모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교육관과 그들이 배출한 시멘트 믹서에 대한 묘사는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얼마나 날카로우며,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알게 했다. 특히 지금의 학교폭력 문제를 돌아보게끔 만드는 학교내 개혁부와 반개혁부에 대한 묘사나 자녀들을 위해 학내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부모들의 움직임은 많은 시사점을 주기도 한다. 구성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흡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나는 이 어린 작가의 앞날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끝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대한민국도 바야흐로 바이슬 시티처럼 선거 열풍 속에 놓여 있다.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모두 실시되는 민감한 시기이다. 이때에, 시민의 눈과 귀를 막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공고히 쌓아가고 있는 독재 권력을 향해 혁명과 변혁을 외치며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이 소설의 내용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올바름 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