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는지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바야흐로 내가 중년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204쪽 중-

 

  책의 가장 마지막 단원에 나오는 글이다. 인생의 전반기, 외부 세계에 적응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안정된 지위와 가정을 꾸려오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밀어닥치는 절망과 비참함, 무가치함,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쏟아지는 공허와 무감각이 중년기를 맞아 인생의 후반기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주어졌다는 것을 이 부분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된다. 최근의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했는지에 대한 답이 주어진 기분이었다고 할까.

 

  사실, 이 단원의 애초 목적은 중년기에 접어든 먼로의 웃는 얼굴속의 슬픈 눈빛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결국 말이 아닌 눈빛의 언어로 드러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결론은 가장 건강한 삶은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감추거나 왜곡하지 않고 적절히 표현하며 사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기 내부의 감정을 수용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공감이 가면서 더불어 40대로 접어든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위기의 실체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책은 그 의도 이상으로 나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말 속에 담긴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상대방과 나의 진심이 만나도록 해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하여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행동이나 태도,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숨은 뜻과 정서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차근히, 그렇지만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언어적 표현에 의존해서 사람의 정서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나이가 들수록 비언어적 내용에 의존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이야기한다. 사회화과정을 통해 대인 지각이 언어에서 직감으로 변화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사회화과정에서의 변화와 성숙은 언어적 표현이 만드는 오해와 상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언어적 전달이 갖는 진실과 거짓을 직시하고 판단해내는 능력그리고 언어와 소통을 기반으로 한 분석과 공감을 통해 인간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훈련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갈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거기에 언어가 갖는 실수와 유희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얹어서...

 

  어쨌든 책은 전반적으로 명료하면서도 쉬운 설명과 사례를 통한 구체성을 통해 언어와 인간의 심리이해를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지는 설명이나 원론적인 설명의 단순함이 군데군데 드러나기도 하지만 여하튼 편안하고 부드럽게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