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작업에 대한 노하우를 하나씩 챙기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과의 부딪힘 속에 인내를 키우고 마음을 비우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종합병원처럼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곳에서의 리모델링은 앞서가는 디자인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공사를 감행하면서 수행하는 많은 과제들, 그것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다. 타협하고 조율하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처음 책소개를 보았을 때엔 종합병원 리모델링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나 디자인과 관련한 노하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본 책은 그런 현장의 노하우보다는 저자 스스로 고백했듯 병원 리모델링이란 분야에서 일하며 겪은 저자의 일기장 같고 현장의 포트폴리오 같은 살아왔던 흔적들이었다.

 

  남편의 품에서 벗어나 사무실을 독립하며 겪었던 마음속의 갈등과 일에 대해 가졌던 소명의식,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수녀들과의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사소한 실수로 리모델링현장이 화재현장으로 돌변한 순간의 절망감 그리고 뼈아픈 경험, 단순히 환자를 고치는 공간이 아닌 방문하는 누구나가 편히 쉴 수 있는 제3의 공간으로서의 병원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 등등... 말 그대로 저자의 살아있는 생각의 흔적들이 지면으로 옮겨진 것이다. 거기에 인간미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사 후의 병원 사진들이 덤으로 따라오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은,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수원의 성빈센트병원이 자주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그저 방문할 때는 ‘오호라, 이것봐라. 병원이 독특하네’ 라고만 생각했지 이러한 땀과 노력이 후면에 감춰줘 있었는지 몰랐기에 책을 읽은 후로 병원이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자주 이용하는 병원이 이같은 따뜻함과 섬세함으로 가득한 곳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좋지 아니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