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인의 죽음’이란 제목을 보며 누가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해본다. 노암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권력의 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김질락’이라는 인물은 과연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지적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서울대라는 간판과 청맥이라는 기관지의 주간, 일류대 학생에 대한 사상 공작 활동, 지하당 조직 등 지나온 면면을 본다면 지식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명 옥중수기라고 부른 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서울대까지 나왔다는 똑똑한 인텔리 청년이 자발적인 혁명 의지 없이 김종태라는 삼촌에 의해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서울로 상경하여 원치 않은 각종 혁명사업에 끌려 다니다 지하당 서열2위까지 되었다는 것이 코미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일관되게 김종태라는 인물을 경멸하고 불신하며, 그의 사상적 뿌리를 비웃으면서도 그에게서 사상 교양을 받고, 반봉건 신식민지 상태인 남한사회의 혁명을 꿈꾸며 지하혁명당까지 함께 도모하였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입으로는 미제와 그 주구들에 의해 불법 강점된 남조선의 계급 대립과 몰락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려움이나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게 무슨 투쟁이고, 혁명인가. 다 때려치우자. 그만두고 정리하자’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대는 이중적인 잣대는 지식인의 위선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질락, 그가 꿈꾸던 혁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어떠한 사상에 뿌리를 둔 혁명의지였던가.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던 비판적 의식과 안목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질락에게 물어보고 싶다. 북한에서 만난 부장에게 뻐기듯이 읊어댔던 남한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대해 이론으로만 빠삭하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진심으로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잘못된 권력을 해체하고 민중을 위한 권력을 만들기 위해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자 했는지를 말이다. 진정 그러했다면 ‘나의 범행과정’이라느니 ‘북괴’라느니 ‘낙오자’라는 식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모두 일시에 부정하고, 그가 해온 모든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속아서 당해온 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그는, 자신 한 몸과 가족이 편안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세상 고민없이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평탄한 직장에 적절한 수입이 보장돼고 승진과 직위상승으로 어느 정도의 신분 획득과 소기의 권력까지 얻을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였을 그런 소인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은 그의 삶이 원치 않았던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그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스스로 끌려들어가며 헛된 권력욕과 갖은 미사여구로 포장된 프로파간다에 현혹된 체 그저 앵무새처럼 혁명을 읊어댄 광대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모습 그대로 다만 지식인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체 허무하게 죽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죽음의 말로가 아닌가. 어떠한 신념이나 의지도 없이 그저 후회와 반성으로만 점철되어진 사상범의 최후라니. 참으로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런 종류의 죽음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조국의 현실이 또한 애달퍼진다. 그저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읽으면서도 과연 이 수기가 온전히 김질락이라는 인물 한명에 의해서 쓰여진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 반공정신을 드높이는 이런 종류의 책이라니....아니, 오히려 더 걸맞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