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님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는 나에게, 그 어떤 대단한 소설보다도 더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와닿았던 에세이집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소설이라도 결국엔 픽션일 뿐이고, 그 픽션은 솔직히 가끔씩은 도가 지나친 구석이 있고 유난히 미화되거나가 그럴듯하게 변화하고 표현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진 김영희 님의 이야기는 그 분의 인생이 솔직담백하게 담긴 '한권의 일기장' 같았다.

페이지  359:  그래서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덧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생활의 일부를 독일로 시집가면서 뗄 수 없어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계속 만들었다. -<중략>-  슬프면 울면 만들었고, 기쁘면 기쁘게 만들었고, 돈이 없을 때는 어떡하나 하며 한숨을 넣어 만들었다.  어쩌다 고국에서 공급받던 한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돈 떨어진 것보다 더 불안했다. 아이들은 뒤에서 농담을 했다. "엄마는 종이 중독증에 걸렸어" 그 말은 진짜 나의 단면이었다. 나는 그동안 독일서 개인전만 70회를 넘게 하고 해프닝을 하고 연극을 했다. 그래도 성이차지 않고 갈증은 더해갔다.  이제 곧 쉰을 앞에 둔 나이에 무서운 힘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시작이다"하는.

 그녀는 이렇듯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혼을 담는다. 항시 종이를 손에 달고 언제나 작품에 매달리지만, 그 때의 그녀의 상황은 언제나 다르다. 언제는 '사랑'에 빠져있을 때도 있고, 언제는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일에 아파도 했으며, 생활비를 만들기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예술가써로서의 고민에도 빠졌으며, 타향생활에 생기는 외로움, 고향에 대한 향수, 살다보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독일 사람들의 생활패턴에도 힘들어하면서, 끊임없이 조물조물 그녀의 손으로 인형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도모르게 이 책의 '김영희'에게 이입해서 읽게 되었다. 그녀를 따라서 외로워하다가,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화내고 그러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이전에도 나는 꽤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쓴 그 책들은 그냥 그 사람의 인생인 것 뿐이다. 나는 그저 읽고 느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꾸 이 책은 내 감정이 이입되었다. 그녀가 아들 '장수'가 겪은 일에는 나도 함께 화를 내야했으며, 다른 두 자식들 역시 '독일'에서 살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에 아파하고 걱정할 때는 나 역시도 "어떡해. 어떡해. 분해서 어째?!"하면서 읽었더랬다, 그녀가 한국의 남편을 잃고 아파할 때는 나도 왠지 마음이 자꾸 아려왔다. 그녀의 친정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서는 나는 속이 답답해짐을 느껴야했고, 그녀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을 자랑스러워할 때는 나역시도 그러했다. 또한, 그녀가 독일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그 분이 김영희 님의 세 자식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며, "사랑한다는 말은 평생의 언약이다"라는 말을 해줄 때는 나역시 설레고, 좋은 분을 만나셨구나하면서 내 일처럼 막 행복하고 그랬다.


김영희 님이 살아오면서, 거쳐왔던 수많은 소중한 그 ’인연’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반짝이던가? 


'김영희', 그녀는 분명히 성공한 사람이다. 예술계에서도, 어머니로서도, 부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성공한 여자예술인'이라서가 아니라, '예술을 하는 하는 한 한국인'의 삶이 솔직하고도 꾸밈없이 쓰여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도 그녀는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살면서 겪은 힘듬을 조목조목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써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나도 몇번이나 울었다.) 자신의 가장 아프고 숨기고 싶은 그녀 삶의 어두운 한 때의 일도, 유머로 은근 덮어가면서 표현하실 때는 난 이 분의 ’유쾌함’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 안의 ’유쾌한 강함’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래의 좋은 글귀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페이지 320: 내가 독일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점점 내가 간단해진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하고 살 수 있었다. 미움은 뒤로 미루고, 어색한 것은 옆으로 미루고, 아이들 김치 만들어 먹이고, 해프닝 꾸미고, 전시회하고....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외국인 추방하자’고 길거리에서 누가 외쳐도 거들떠보고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좋은 일만,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문체는 또 어떠한가? 반짝반짝 감성이 돋보이는 문체에  난 ’이 분은 글도 잘 쓰시나보네.’하면서 감탄을 하고 막 부럽기까지 했다. 


참 좋은 책을 만나다. 이렇게 계속 중간중간 눈물나게 했던 작품을 쉽게 만나기 힘든데,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행운이었다. 

정말이지, 읽는내내 나를 중간중간 울리고, 자신의 성공한 삶에 대한 '그럴듯한 자랑'보단 자신의 솔직담백한 일기를 보여주며 그로부터 묘하게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용기'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듯했던 김영희 님의 ’아이를 잘 키우는 여자’...

그 어떤 훌륭한 소설보다도, ’인간의 삶’이 더 아름답고 감동스럽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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