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금씩 울고 있다. 아! 가을이 온다.
- 가을을 닮은 가수들의 노래로 먼저 느껴보는 가을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어둑해진 퇴근길에 에어컨을 끄고 달리는 차창의 문을 활짝 열어본다. 습한 공기에 얼른 다시 닫고 싶었지만 한여름에는 느낄 수 없는 조금의 선선함이 느껴져 창밖으로 천천히 팔을 내밀자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참 좋다. 텁텁한 공기 속에서도 느껴지는 이 계절의 변화. 아, 가을이 오나보다!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는 나는 해마다 가을을 심하게 타며 곤혹을 치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런 센티멘탈한 기분, 이 계절이 아니면 언제 취해 볼소냐!’ 하며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우울함을 즐기기도 한다. 물론 이러고 있는 나의 곁에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야! 정작 가을 탈 사람은 난데 네가 이러면 난 어쩌란 거니?’ 라며 강력한 레이저를 뿜어대는 주변 남자들 때문에 그저 분위기만 조금 내고 말 때도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거 뭐가 있을까? 낙엽, 바람, 유난히 푸른 하늘, 분위기, 남자,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음악이다. 유난히 가을이면 남자가수들의 애절한 보이스가 더욱 착 감기는 느낌이다. 마치 그들의 사랑을 내가 방해라도 한 듯한 느낌으로 매력적인 목소리에 취해버리곤 한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본다. 내 맘대로 뽑은 가을과 잘 어울리는 가수와 그의 노래.
1. 성시경 - 바람, 그대 (성시경 5집 - The Ballads )
바람이 불어서 눈을 감았더니 내게로 달려오네 가을이
젖은 머리로 넌 어디를 다니나
코끝엔 익숙한 그대 머리 향기
그대의 손 따뜻했던 그 온도와 그대의 얼굴, 얼굴
단숨에 또 나를 헝클어버린 내 가을이
- 성시경 < 바람, 그대> 中
성시경의 5집에 수록된 <바람, 그대>라는 곡은 가을을 몸에 닿는 그 촉감 그대로 표현한 곡이다. 매우 서정적인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유명한 라디오작가 이미나씨가 가사를 쓰고 하림씨가 곡을 붙여 만든 곡이다. 바람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초가을부터 여심은 물론, 남자들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이 노래로 가을을 느껴보자.
얼마 전 민간인으로 돌아온 가수 성시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극과극이다. 그의 콘서트를 가보면 약 80% 이상이 여자관객이며, 짐작하건데 약 5%의 남성팬을 제외한 나머지남성관객은 여자친구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그냥 남자들이다. 후문에 의하면 그렇게 끌려(?)온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조우하곤 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눈빛으로 모든 것이 통한다고 한다. 발라드의 생명은 ‘턱’이라며 가녀린 턱 선과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성시경씨에게 유난히 여성팬이 많은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 김광석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앨범 : 1+2)
바람이 불면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 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 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김광석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中
가을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노래 중에 한 곡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이다.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누가 내게 묻는 다면 나는 주저 없이 故김광석님을 뽑을 것이다. 나는 그분이 살아생전 노래하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분의 노래를 자주 듣고 자랐다. 참 이상한 것은 기쁘거나 행복할 때에는 그분이 떠오르지 않다가, 이렇게 문득 계절의 변화 내지는 마음이 우울할 때 가장 먼저 김광석님의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아마도 너무 빨리 져버린 한 떨기 꽃이었기 때문이리라. 잠시 읽고 있던 책을 접고, 누군가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게 만드는 곡이다.
3.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이문세 4집 - 사랑이 지나가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中
이문세씨와 함께 많은 작업을 하셨던 故이영훈님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이문세씨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애절하게 감성을 적신다. 특히 이 곡은 故이영훈님이 "이십 여 년 전 어느 날 저녁 편안히 썼던 이 곡은 나를 평생 작곡가의 길로 이끌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두 사람에게 더욱 의미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가을, 잠시 떠나간 사랑을 추억해 보는 아름다운 여유가 있기를 바라본다.
4. 김성호 - 김성호의 회상 (김성호 1집 - 회상)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눈을 보았지 후후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멀어져가는 뒷모습 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 나는 가슴 아팠어
-김성호 <김성호의 회상> 중
1989년도 김성호 1집에 들어있는 <김성호의 회상>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조금의 촌스러움도 없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곡이다. 김성호 특유의 잔잔한 목소리로 떠나가는 연인을 붙잡을 수 없음을 표현하고 있는 이 노래는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로 노래 제목 <회상>처럼 …
5. 뱅크 - 가을의 전설 (뱅크 4집 - Virus )
가을은 또 다시 찾아와 널 다시 생각나게 해
그렇게 보고 싶던 너를 잊은 줄 알았었는데
함께 걷던 이 거리 새처럼 날던 낙엽의 향기
나도 모르게 그 기억 속으로 혼자 걷고 있어
- 뱅크 <가을의 전설> 中
가을을 있는 그대로 가장 잘 표현한 진정한 남자의 노래가 아닐까 생각된다. 뱅크 4집에 수록된 <가을의 전설>은 강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와 약간의 가성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노래이다. 떠난 사랑을 잊지 못해 돌아오기를 바라는 남자가 떨어진 낙엽 위를 거니며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외로움. 고독함. 그리고 사랑을 애절한 가사와 음색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곡이다.
이렇게 노래를 듣고 있으니 노랫말이 정말 ‘시’적임을 느낄 수가 있다. 이제는 품절되어 예전 앨범을 구매할 수도 없는 앨범도 있지만, 미사여구 없이 솔직 담백하게 쓰인 가사와 편안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 멀리서 소리 없이 걸어오는 이 가을을 소중한 추억 속에 간직된 음악과 함께 조용히 마중 나가 본다.
글 / 그대를 만나다
사진 / 인터파크 뮤직
2010. 9. 2. 기사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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