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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데이즈 >

"서서히 사라지느니 순식간에 타오르겠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유서에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몇몇 예술가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예술을 위해 살다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기 위해 예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외롭고 고독할 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그런 그 들의 고통 속의 결과물을 사람들은 보고 듣고 즐긴다. 누구에게 존경 받고 사랑 받아도 그들의 고독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라는 음악가의 죽음에서도 그 고독한 울림이 느껴진다. 이 영화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모델로 삼은 한 예술가의 마지막 시간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그 고독을 잔잔히 응시를 할 뿐이다. 이러한 시선은 전작 <엘리펀트>에서 무섭도록 아름답고 조용한 그 날을 안타깝도록 담담하게 담았던 시선과 흡사하다. 하지만 <라스트 데이즈>에서는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을 그저 묵묵히 배웅하는 시선이라는 점이 다르다.   

숲을 헤매는 남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길도 없는 산길을 거침 없이 밟으며 내려오는 이 남자는 블레이크라는 뮤지션이다. 불을 지펴서 밤을 보낸 뒤 다시 어느 집으로 내려온 그는 조용히 없는 듯 숨어 산다. 같은 집에는 친구들이 잠 들어 있지만 그 들과 블레이크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피하고 숨을 뿐이고, 가끔 말을 걸어오지만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무너져 가고 있다. 그가 두 갈래의 길을 만나는 장면에서 거침 없이 한 쪽 길을 택해서 걸어갈 때 흔들림 없는 죽음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슬프거나 안타까운 느낌은 없다. 구스 반 산트는 이렇게 죽음의 길을 담담하게 가려는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마치 옆에서 지켜 보듯이 담아내고 있다. 그 고독의 공기까지 화면 밖으로 밀려 나온다.

"청소년기 부터 노년기 까지 사는 건 정말 현실이야. 주저 앉아야 하나? 다시 가야하나?" 

죽기 전 블레이크가 부르는 노래의 첫 구절은 스스로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도 남기는 것이 있다. 소멸을 선택한 블레이크는 그대로의 선택이 최우선이지만 다시 길을 떠나야할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구스 반 산트가 담아낸 죽음에 대한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말미 사망한 블레이크가 자신의 육체에서 분리 되어 숲이 보이는 창문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은 그의 죽음이 어떤 시작을 열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살아있던 블레이크의 모습보다 죽어서 자유롭게 떠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이 모습, 커트 코베인을 소름 돋도록 재현해내는 만큼 블레이크를 연기한 마이클 피트의 모습은 배우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만일 배우에게 규정 지을 수 있는 신념이라는 것 있다면 그 들은 그 것을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 속에서 깨닳을 수 있을 것이라 짐작 된다. 그런데 이 배우 마이클 피트는 그 신념을 일찍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그냥 배우답다. 무엇 때문에 이 젊고 어린 배우가 고민으로 가득한 어려운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너무 치열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재능있는 감독과 재능이 보이는 젊은 배우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이 멋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