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이 비뚤어진건지 아뭏튼 한참 흥행중이거나 다른사람들이 극찬하는 영화는 잘 보지 않는 습성이있다.

이러한 습성은 대량소비문화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며, 권장할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해받지 못할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저 다양성이 상호존중되는 사회에서 개인적 특성일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그 인기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갈 무렵엔 어김없이 찾아서 본다는 특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것 또한 나의 웃기는 정체성의 한 면이다.

 

어쨌든 난 오늘 뮬란을 봤다. 개봉한지 1년 반이 다되어갈 무렵이다.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때는 바야흐로 위진남북조 시대. 위나라를 공격하기위해 아홉개의 부족들이 힘을 합쳤다.

위나라 역시 이나라를 방어할 군사들을 모으기위해 각 마을을 돌며 징집을 시작하는데..

주인공 뮬란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나가시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 몰래 전쟁터로 간다.

그녀는 비록 여자지만 어린시절부터 갈고닦은 무예실력으로 전쟁터에서 승승장구를 떨치며 대장까지 올라간다.

그런 그녀를 진정한 장수로만들어 준것은 무태였고, 알고봤더니 그는 위나라 일곱번째 왕자였단다.

몇번이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절제된 사랑이 무척 가슴을 울렸다.

결국  유연족과의 12년동안에 걸친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을 끝내기위해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런닝타임은 길었지만, 전쟁속의 비극적 상황들과 그속에 담긴 인간애는 눈물을 훌쩍거리기에 충분했고, 갈수록 흥미진진 손에 땀을 쥐었다.

그안엔 남성중심우월주의가 비췄고, 아버지를 향한 딸의 효심이 있었으며,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 질투 , 파멸 , 전쟁이 가져다주는 무고한 희생들, 그리고 사랑과 인내 등등.. 영화를 보는내내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마음에 탁탁 와 닿았다.

 

물론 내가 감독의 의도를 호도하는 부분도 있을것같다.

가령 '유연족의 대부족장을 시봉하는 서양인' 이라는 구도는 ,  중국이 의도적으로 주종관계를 그린것같아서.. 이게 혹시 G2간의 자존심싸움과 연관된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한번 살펴보자.

유연족 대족장이 아들에게 살해되기 직전에 아들과 나누는 대화다.

 

 아들 : 아버지, 우린 왜 항상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사나요?

아버지 : 그건 말이지, 우리나라엔 쇠가 없어서지..

아들 : 그럼 쇠를 빼앗으면 그걸로 뭘하나요?

아버지 : 무기를 만들어야지..

 

난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는 모습도 이 전쟁터와 다를게 뭐가 있을까.

아침이면 출근을 한다. 돈을 벌기위해 경쟁과 탈락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생존을 위해 돈을 번다.

밥을 먹기위해..

그렇게 번 돈으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힘을내서 또 돈을 벌러간다.

 

그렇다. 삶이 곧 전쟁이고 전쟁이 곧 삶인것이다.

처음과 끝이 맞물려 시작도 끝도 찾을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살아있는 동안은 빡세게 허리끊어지게 개미처럼 소처럼 생존을 위해 싸우다 죽는 인간의 삶은 위진남북조시대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난 그게 씁쓸하다.

 

이 영화의 끝은, 전쟁이 종식되는것이지만 전쟁이 가져다준것은 비극 뿐이었다.

그사이 분명 뮬란은 성장했다.

하지만 그 댓가는 너무 혹독했다.

몇번 죽었다 살아야 했으며, 애간장 끊어지는 이별의 아픔속에 전쟁을 통한 성장이라면.. 차라리 나는 치매에 걸리고 말지 그런과정을 통한 성장은 하고싶지 않다.

 

 

 

  

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