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 여가수가 부른 동명의 대중가요의 한 소절이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이것이 한계령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이기도 하다.

 

아마 비탈길인 그 제에는 지금은 많은 눈이 내려서 통행이 금지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제는 강릉으로 가는 큰 길인 옛길 대관령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고, 길도 더 협소하고 불편하다.

 

그 고개에 눈이 많이 내리면 당연히 발이 묶이고, 외부와는 차단되어 당분간 고립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 고개에서 ‘한 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뜻밖의 폭설을 만나서 발이 아니라 운명을 묶였으면 좋겠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립을 구출해 주기 위해서 구명 헬기가 찾을 때에도 꽁꽁 숨어버리고, 야생 조류나 짐승들의 먹이를 주는 헬기에라도 들키지 않게 꽁꽁 숨어버리겠다는 의지가 짠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시 한 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를 뒷받침하는 하얀 설국의 그림이 시원하다. 역시 시인이다. 험한 산길을 만나면 걱정부터 먼저 하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다. 오히려 위험을 자처한 등산가나 오지나 험지를 탐험하는 사람들에게서 엿 보이는 감투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살고자하는 저자의 때 묻지 않은 시심이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오염되지 어린아이들과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시인이란 이성이 아닌 감성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좋은 시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실감나게 하는 시각디자인적인 그림이 일품이다. 짙은 질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한국화 같은 단조로운 색채에 약간의 명암을 곁들인 그림들이 현실감을 더해 준다.

 

강원도 산간 지역에 발령된 대설예비 특보가 보도되는 이 시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실제로 그 고개를 가 보지 못해도 이 책을 보고 읽으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다.

어디선가 뿌드득 뿌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책 앞표지에서부터 책 뒤표지까지 온통 흰 눈으로 가득한 이 책 한 권이면 한 겨울 내내 폭설의 한계령을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