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莫言)의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이 드디어 한글로 완역되었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다섯 편의 중편이 연작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제1장 「붉은 수수(紅高粱)」가 『붉은 수수밭』이란 문고판으로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바 있고, 일찍이 한국에서 개봉한 장이모우(張藝謨) 감독의 <붉은 수수밭> 또한 이 책의 일부만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그러니 이번 『홍까오량 가족』 완역을 통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면모가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 셈이다.

『홍까오량 가족』의 배경은 중일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의 산둥성(山東省) 까오미(高密) 둥베이(東北) 향촌이다. 옮긴이 박명애의 정보에 따르면, 상둥성 지역은 반체제적인 역사가 줄기차게 이어져온 지역이며, 그런 까닭에 민병 조직 또한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민병 조직을 만들고 이끌면서 혁혁한 전과(戰果)를 남기면 그 이름은 전설처럼 후대에 전해진다. 작품의 주인공 ‘위잔아오(餘??)’와 ‘따이펑리옌(戴鳳蓮)’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홍까오량 가족』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복원해 낸 데 있다.

가령 위잔아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여럿 죽이는 악당이다. 아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바람을 피우고 첩을 두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영웅의 면모도 드러내고 있다. 부패한 관리에 호락호락 무릎 꿇지 않으며, 일본군의 살육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국민당의 군대(이념)에도 공산당의 군대(이념)에도 거리를 둔다. 다만 그는 배운 것은 없고 싸움에는 능한 민병 조직의 사령관일 따름이다. 실제로 작품에서 복원되고 있는 일본군, 국민당의 군대, 공산당의 군대, 민병 조직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이는 어떤 하나의 편향으로 흘러버릴 위험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민간신앙이 개입하는 양상이다. 여우와 교감하는 인간이 등장하는가 하면, 현대의학의 수준을 뛰어넘어 둘째 부인의 가사 상태를 치유하는‘리산런(李山人)’이 등장한다. ‘산런(山人)’이 선인(仙人)의 면모와 일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흑안(黑眼)’이 이끄는 ‘철판회(鐵板會)’ 또한 마찬가지다. 민간종교에 귀의하고, 일정한 제의를 거친 후, 주문을 외우면 총알을 맞아도 아무런 고통과 상처가 없으리라는 신념. 언뜻 엉뚱해 보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종교와 군대가 결합하는 사례는 중국 역사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어디 중국만 그러하겠는가. 조선의 갑오농민전쟁에서도 이러한 면모는 나타났다). 따라서 『홍까오량 가족』은 민중성을 통해 중국의 전통 위에 올라서는 면모까지 획득하게 된 셈이다.

모옌은 중국어권에서는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인의 역사와 삶을 통하여 세계문학과 만나고 있기에 그러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게 참 중요하다고 본다. 노벨문학상의 수상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방편으로 나/우리의 삶과 역사를 성찰하고 그 자리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 그저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흥미롭고 기괴한 사건만을 좇아나가서는 대화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줏대 없이 남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배울 점은 따라 배울 줄도 아는 것이 미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