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기다렸다는 듯 내년의 경기나 트렌드 등을 예측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서적은 전공자나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서적을 사는 독자층은 매우 광범위하다. 편의상 논의의 주제를 트렌드로 한정 짓도록 하자. 우리가 트렌드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 예측은 곧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읽고 미리 대처하는 자는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어떤 주식을 사고, 어떤 사업을 하며, 어떤 제품이 시장에 필요한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등을 알 수 있고, 그것은 현대자본사회를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연구소와 전문가들이 트렌드 예측 및 분석에 매달리고 있고 기법과 예측력 또한 점점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되는 트렌드 서적의 종류가 엄청나고 독자들은 비판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를 상당히 좋아한다. 아예 장르적 광풍이 불던 때도 있고 몇 가지 키워드나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이 되는 부자되는 비결, 돈 버는 방법, 미래 예측 등의 책을 참 좋아한다. 그에 부흥해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단기간에 그럴싸하게 만들어 찍는 일종의 '정크 도서'들이 정말 많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국내 트렌드 연구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내놓은 진단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열권 쯤 책을 보면 괜찮은 책 한두 권 찾을까 말까하던 시절이 불과 몇년 전이었다.

좋은 트렌드 서적, 바른 트렌드 분석 및 예측은 무엇일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유행(fad)와 트렌드(trend)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유행을 트렌드로 착각하는 것이다. 트렌드는 일시적인 변화나 붐이 아니다. 과거와 다른 경향과 방향성이지만 그렇게 되어지도록 예견된 흐름이다. 그래서 트렌드 연구는 메가 트렌드, 더 나아가서 메타 트렌드라는 수십년에서 그 이상의 상상을 초월할 긴 기간의 흐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면에선 미래학과 연결되는 부분도 많다. 지식과 방법론 이상의 타고난 직관(감)도 요구된다. 1  올해도 돌아온 12월, 트렌드 관련 신간 서적들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다가 처음 선택한 책은 한국트렌드연구소와 PFIN 공저의 <핫 트렌드 2011>이다. 

 

이 책은 두껍지는 않지만 앞서 말한 기준에서 볼 때 괜찮은 트렌드 책이다. 일단 이 책을 만든 한국트렌드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트렌드 연구 기관이고 PFIN은 패션 트렌드 분석 기관으로 시작해 현재 종합 트렌드 정보 및 컨설팅 기업으로 모두 10년 이상의 노하우가 쌓인 곳이다. 2008년부터 함께 내고 있는 '핫 트렌드' 시리즈는 올해로 3번째(2009, 2010, 2011)를 맞이했다. 따라서 <핫 트렌드 2011>은 저자들의 전작들과 비교하며 (그들의 눈을 통해 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얇은 분량에 깔끔한 편집, 사진과 글을 적당히 섞은 높은 가독성(저자들의 분석 부분과 사례들을 글씨체와 크기를 달리하여 구분했는데 사례 부분의 글씨 크기를 7~8포인트로 한 것은 독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어 아쉽다)과 쉬운 표현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핫 트렌드 2011>은 디지털 트렌드를 중심으로 2011년을 풀어나간다. 그럴만한 것이 가장 빠른 변화와 혁신으로 최근의 산업과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분야가 디지털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웹 2.0에 대한 이론과 마케팅 기법이 거의 정립되었을 때2 이미 웹 3.0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웹 4.0얘기까지 발전되었다. 이 용어 대신 저자들은 조작적 정의로 디지털 1기, 디지털 2기라고 표현하는데 디지털 2기를 웹 2.0 이후의 시대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저자들이 꼽닌 2011년의 디지털 트렌드는 단연 스마트폰과 SNS로 요약된다. 특히 2011년 한국의 스마트폰 가입자수가 2000만명이 넘을 것이란 예측과, IT 기술과 인터넷 환경이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이 (디지털) 트렌드에서 뒤쳐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분명 <핫 트렌드 2011>이다. 정신(Spirit), 일과 교육, 놀이, 네트워크, 성과 세대(세대에 더 초점인), 공간, 감각 7가지 영역으로 나눠 의식주 전반에 걸친 2011년의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한 영역을 시작할 때마다 그 영역의 키워드로 제시한 단어의 의미와 그 트렌드에 대해 풀어주며 시작한다. 먼저 저자들의 분석을 실은 후 한 영역당 예닐곱개의 사례를 싣는다. 각 사례는 앞으로 나올 것이 아니라 트렌드 새터로서의 모습을 보인 현재의 사례들이다. 친절하게 본문의 모든 내용들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한번 정리해주고 시작한다. 그것도 길다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키워드만 봐도 책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게 구성한 목차가 있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에필로그에선 저자 후기와 참고 문헌을 담았다.

혹시 이 쪽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독자나 학부 전공자3라면 저자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나 책의 일부 내용들이 조금 도움이 될 듯 싶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단순히 자신들의 예측 결과 보고에 그치지 않고 트렌드를 읽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매우 쉬운 표현으로 은근하게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예민하게 오감을 열고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사람들의 가방 안, 대화 주제, 구경하는 물건 등등), 공진화란 큰 키워드를 먼저 놓고 그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들을 늘어놓으며 맞춰나가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례들을 늘어놓으며 그것이 결국 향하고 있는 한 방향(공진화)을 알아차리는 것, 아무것도 아닌 얘기 같지만 트렌드 연구자의 기본이요 진리다. 책에는 다른 이유로 인용되는 간디의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도 트렌드 연구의 어려움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가 되는 나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워크의 계속되는 진화, 단순하고 원초적인 놀이와 게임에의 몰두, 소셜 네트워크, 주목해야할 10대, 유기체화되는 건축, 현실과 가상이 버무려진 감각 체험 이렇게 저자들이 꼽은 2011년의 7가지 소키워드들은 영역이 다를 뿐 서로 맞물리며 연결된다. 그리고 이 소키워드는 다시 '공진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공진화(共進化), 관계를 통한 진화,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진화하는 것으로 함께 뭉치며 발전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핫 트렌드 2011>의 결론은 단순히 이 책의 전 내용만 범위로 한 것이 아닌 <핫 트렌드 2009>와 <핫 트렌드 2010>의 내용과도 계속 연결되는 내용이다.

이제 새해가 보름도 남지 않았다. 한국트렌드연구소와 PFIN의 이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지 2011년 동안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한편 2011년 트렌드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만 읽어서는 소용이 없다. 시중에 나온 다른 2011년 트렌드 예측 서적들을 읽어보며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찾아보길 바란다.4여력이 되어 저자의 전작이나 리더스북의 넥스트 시리즈(트렌드 서적 시리즈임)들 같은 다른 트렌드 서적을 읽어보면 더욱 금상첨화이다. 한편 매우 친절하고 쉬운 책이지만 본문이 사례 나열식이다보니 그 연결고리들까지 친절하진 않다. 저자들이 던져주는 이야기와 개념들을 독자 스스로 읽으며 연결하면서 저자들이 말하는 큰그림을 완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