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애지중지하던 못난 습관으로 그나마 밑줄 쫘악 그으며 책 보기 시작한 건 몇 년 안 된 일이다. 그랬던 내가 때론 컴을 열어두고 메모를 남기지 않나 수첩을 펼쳐놓고 기록하기까지...... 브리꼴레르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떼보리라 저자를 따라 해봤다. 그렇게 오래도록 행간에 머물고 저자의 호흡에 닿아보려 애쓰며 정성껏 읽었다. 그저 단순 따라 하기가 아니라 그동안 내 몸 속에 잘 숨어있기만 했던 그 사랑스런 언어들을 마구 쏟아낼 기회를 얻었었기에라고 고백하는 게 더 어울린다. 그만큼 저자는 내가 갖고 있었던 관념들을, 또 더 나아가서는 나름의 방법으로 체화하고 육화했던 그런 언어들을 마구 구사해주고 있어 속이 시원해지며 위안을 얻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질 해내는 사람을 만날 때의 그 희열을 맛보고 내내 설렘으로 한쪽 한쪽을 넘기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를 지향하는 프로니모스를 근간으로 한 브리꼴레르라는 개념은 21c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자 이상적 인물이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손재주꾼’으로 체험을 통해 해박한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실전형 전문가, 다양한 기존 지식을 융합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 3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창출해내며 더 나아가 도덕적 미덕까지 갖춘 신인류로 신영복 선생이 늘 강조하던 목적과 목적이 이르는 과정이 모두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盡善盡美의 인간이다.

 

저자는 브리꼴레르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어떻게 그런 덕목을 갖출 것인지, 그들이 그려갈 미래에 대한 행보가 어떠한지를 그 자신이 체화하고 치열하게 매달렸던 과정을 때로는 시로써, 때로는 논리로써 간절함을 담아 토로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이 책 한권을 통해서도 동서양의 고금문서들을 오가며 초서(鈔書)와 질서(疾書)를 통한 삼독(三讀)과 삼행시 연습이나 패러데센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끊임없이 조화의 묘미를 편집해내는 절차탁마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얼룩, 시련과 역경의 얼룩을 희망과 도전, 꿈과 성취의 무늬로 탄생시키는 백절불굴의 정신을 쏟아내고 지식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지식생태계를 다시 쓰고자 하는 사람, 이심전심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배운 것을 남 주기 힘든 법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아닌 타자중심적 보자기를 싸겠다는 화이부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에게선 살신성인도 불사하겠다는 팽팽한 긴장과 간절함이 보인다.

 

주변의 널려 있는 하찮은 것들을 모아 재미있게 놀 줄 아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여주는 예술가로 거듭나게 될 브리꼴레르의 탄생을 지켜보노라니 이 땅의 교육자, 부모들, 지식인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꿈꾸는 선한 사람들이 영원히 늙지 않는 청춘의 마음, 아레테를 지향하며 후 세대들에게 새로운 생태계를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 책임감이 앞선다. 저자의 간절함이 와 닿은 덕분일 테지......

 

젊은 날 내 영혼을 흔들고 평범하지만 가상하게 이 생을 구가하게 된 나를 있게 해준 한 초인이 떠오른다. 영원한 미완성인 채로 끝나게 될 이 인생 자체를 껴안고 노래하고 춤추라던 라즈니쉬의 음성이 들리는 듯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