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즐거워 늘 흥분된 상태에 있는 말괄량이 여자 꼬맹이가 있었다.

총명하고 열정도 넘쳐서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고 욕심도 대단했는데

순수하긴 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거칠고 말도 빠르니

행여 실수하고 교만해져서 인간성마저 거칠어질까 걱정하던 부모가

내게 와서 다듬어 주십사 청을 넣었다.

어릴 때부터 내 권유로 한자 공부를 해왔던 녀석인지라

일고의 망설임없이 '사자소학'을 교재로 해서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면서 4개월에 걸친 프로그램을 시도했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이는 우선 한자를 통한 지적 성취를 이루니 신이 났고,

한 자 한 자 연결해가며 뜻을 유추하더니 덧붙이는 자기 해석에서는

여지없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응용력을 더해나갔다.

 

手勿雜戱 口勿雜談(수물잡희 구물잡담)   65쪽 인용

"손으로는 딴 장난을 하지말고, 입으로는 잡담 하지 말라..

 히히히..선생님, 전 이거랑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어요.

 근데 안 떠들려고 해도 자꾸 말하고 싶어져요..."

 

我身能惡 辱及父母(아신능악 욕급부모)  120쪽 인용

" 내가 악해질 수 있으면, 욕이 부모에게 미친다.

  선생님, 우리 반에 차oo이가 있는데 말썽을 하도 부려서

  우리 담임 선생님이 큰 소리로 화내면서 엄마 상담 오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엄마 욕 먹게 하는 거지요? 걔에게 말해줘야 겠어요."

 

한학을 전공한 저자가 가족사에 불과할 기록일지라도

세상에 내보여봐야겠다고 결심한 대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같은 길을 걸어봤고 지금도 논술 뿐 아니라 한자나 중국어를 지도해주는 입장에서

종합적인 심성 훈련이 되는 작업임을 알길래 구절구절 깊은 공감이 일어난다.

 

한동안 국내에 한자검정시험 급수 따기 열풍이 불어서 집집마다

그 근본 뜻을 새기거나 한자 문화를 익히지 않고 글자로서의 한자로만 인식시키느라

하루에 한 자씩 쓰게하고 외우게 하며 숨바꼭질을 하는 진풍경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터라 이 책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아들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나선 아버지와 아들들의 대화도 정겹고

그 대화들을 일일이 기록했던 저자의 내자의 모습도 아름다이 그려진다.

다만 아쉬운 것은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아이들의 일상 체험 중에

문장과 적절하게 조합이 되는 사안들을 비유로 해서 접근을 했으면

더더욱 생동감 있고 재미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아, 물론 저자의 자녀들이 한문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가 큰 걸 보면

말썽을 그다지 부리지 않는 조숙한 어린이인 것 같은 점을 간과할 순 없고

초판이 쓰여진게 1999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또 달라진 세태들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좀 윤색을 할 필요는 없었을까 싶기도 하다.

정말 말썽쟁이를 둔 부모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더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는 바다.

 

여하간에 한 학자의 책임감이 사자소학의 가치를 재정립시켜두었고

한자 학습서로도 여간 친절하지 않아서 부모들의 성실함만 보장되면

한자 학습으로나 인성 교육에 있어서나 어떤 교재보다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책이다

이미 10여년 전에 출간할 수 있었던 학자의 소명감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