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을 하면서

동료 상담사 중에 새터민 가정에 대한 애환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또한 종편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만나게 되는 북녘 동포들의 증언은

여전히 딴나라 얘기들로 가득해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의 육성으로 기록된 남북교류의 현장.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 나눈 온기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서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는데 잔향이 오래남아

통일의 대업을 이뤄야 할 다음 세대들에게 꼭 들려 주고싶어진다.

 

 

회고록 형식을 띤 이 책은 화가 이중섭의 '봄의 어린이' 작품을 삽화로

각 장을 열면서 미약하지만 절대 끈을 놓을 수 없는 '희망'을  노래한다.

책 군데군데에서 억지에 가깝고 불가능에 가까운 떼를 쓰는 북한을 향해

그래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최대한 품으려 노력하고

부드럽고도 자상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만나게 되는

북한의 실무자들이나 인민들에게 연민의 정을 쏟아놓는 휴머니스트를 만나게 된다.

 

 

민감한 사안을 지혜롭게 헤쳐나간 저자의 유연성도 인상적이고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북한 관계자들이나 북한을 서슬퍼런 땅으로

상봉가족이 주고 가는 돈이나 물자마저 몰수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남한사람들 모두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들로 가득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수륙공중으로 헤쳐 다니며 지나온 세월동안

만남이 거듭되고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이해의 폭을 좁히게 되는 장면들을 보면

그래 어떤 식으로 자주 만나야 한다는 절실함이 요구된다.

 

 

북측 보장성원의 평양대학 입학을 축하하느라 롱맨 영영 사전을 준비해가고

행여 떠나면서 그 사전을 잊고 전하지 않을까 전 날밤 찾아와서

차마 달라고는 못하고 사전 언저리를 만지작대던 보장성원의 얘기는

함축적으로 남북관계를 설명하고 있어 가슴이 울먹해지는 느낌이다.

햇볕정책에 불만을 품고 강성으로 비난하던 야당의 한 의원이

북한에서 지내는 동안 북녘 동포들의 실태를 보고 느끼며

밤마다 자신들의 간식거리를 인근 주민들의 창으로 넣어주던 장면.

그래, 그게 바로 관계이겠다.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준엄한 관계.

 

 

결코 큰 소리내지 않지만 자신이 부볐던 온기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북녘 동포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고픈 훈훈함이 깃들게 된다.

내용 중간중간 이해를 돕는 북한의 모습을 담은 사진 기록들도

그저 가벼이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이야 어떤 각을 세우건 종교계나 문화인사들의 교류 노력이

다양하게 펼쳐져 통일을 향한 밑작업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 생각이 든다.

겨레말 큰사전 편찬을 위해서, 영통사 복원을 위해서, 밤나무 단지 조성을 위해서

남한의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북한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살리려는 노력들......

 

 

이런 말랑말랑한 사람 냄새 솔솔 풍기는 얘기들이 많이 전해져야 한다.

결코 북한 사람들은 뿔 달린 사람들도, 달러 획득을 위해선 후안무치의 파렴치한

짓들을 무조건 감행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님을......

농담이 통하고 정이 통해서 슬쩍 규정도 어겨가며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순박하고 순전한 내 누이자 형제들임을......

 

 

개성공단의 철수와 관련한 허무한 상황들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대북정책은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럭비공이나 다름없고, 다시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 남북 양측의 옹졸함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게도 되지만

책 전면에 흐르는 통일꾼들의 소박한 온정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 같아진다.

 

 

남북의 대치 상황이나 우리 조국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묻는 자녀들을 뒀다면

이 책을 내어줌으로써 많은 말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저 경제적으로 몇 십년 뒤져있을 뿐, 여전히 사람 간의 정이 흐르고

순박한 이웃같은 어쩌면 부모 세대가 겪은 정서를 가장 닮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그리하여 통일하는 일이 결코 두렵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