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사랑]

생각지 못한 좋은 기회가 주어져 접하게 된 시적 에세이 ’분홍주의보’다. 사실 나는 소설류를 좋아한다. 내용의 흐름이 있을 뿐더러 내용을 꼬아도 그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함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어려운 감이 있다. 에세이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가 본인의 느낌이나 기분을 표현한 글이기 때문에 저자와 소통이 되지 않으면 정말 난감한 것이 에세이다. 이렇게 어려워 하는 두 부류가 섞인 시적 에세이집이 내 품에 들어왔다. 물론, 옮긴이가 정한 장르이지만, 사실 읽기 전에 살짝 겁먹은 감이 없지 않다.

분홍주의보는 한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한 벙어리 소녀 발렌타인이 사랑을 처음 느끼기 시작하면서 전개되는 독특한 사랑이야기와 몸에 생기는 변화들을 말한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폭설주의보, 호우주의보 심지어 영화제목인 파랑주의보도 들어봤지만 ’분홍주의보’는 처음이었다. 즉, 사랑으로 인한 변화를 예감하는 사랑의 징후를 ’분홍주의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이 손을 꼭잡고 있는 사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뭔데?                                                                  가만히 있는 사이…….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하는 일일 거야.       두렵지만 깨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는 꿈같은 거겠지 ……

가만히 있는 사이인 그가 사라지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몸이 지워지는 듯 하며 땅에 떨어진 쿠키처럼 자꾸 금이 가고 매말라 가는 것 같고, 파란색 오줌을 누고 난 아이처럼 창백해지고 있는 듯한 몸의 기상변화. 그에게 더욱 고백을 하고 싶지만 벙어리이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말을 못하는 발렌타인만이지만 가만히 손을 잡고 꿈의 여행을 통하며 시적언어로만 전달되는 그녀만의 소통을 보여준다.

가만히 있는 사이인 그와 가만히 입술을 만지고 눈을 만지면서 이미 그들의 마음은 소통되었음을……. 우리가 하는 너무 많은 언어들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비밀의 문이 열리며 어느샌가 스스륵 스며든 것이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에게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가만히 그의 ’곁’이 되주면 돼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곁’은 든든하니까……

분홍주의보를 덮으면서 짧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저자와 소통한 것일까? 너무 나의 느낌대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역시 에세이는 나에겐 조금 힘들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아무렴 어떻겠나 싶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를 한다. 사실 마음이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고 몸의 변화도 따르지만 너무 많은 언어로 둔갑시키기에 그것을 온전히 느껴지 못할 때가 있지 싶다. 요즘 우리의 사랑에 맛이 강한 화학 조미료 대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스며드는 천연 조미료 떠올려보게 하는 책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이... 언어를 통하기 보다는 한번 조용히 두 손을 잡고, 눈을 감고 그 따뜻한 ’곁’을 느껴보면 어떨까?
서로에게 천천히 사랑이 스며듬을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