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p.17

아빠는 전문 고발꾼이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

동사무소에서 선물 들고 찾아올 정도니까 말 다했다.

박주사라는 공무원이 아빠 담당인데

손에는 십 킬로짜리 쌀포대나 세제선물세트 따위를 들고는

비굴한 얼굴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박주사라고 자존심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아빠 같은 인간 말종한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빠가 일 년에 수백 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그야말로 민원제조공장이기 때문이다.

주차구획선, 공사장의 분진,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 구청 홍보지의 오탈자,

심지어 구청장의 자동차 모델과 연식까지 문제삼는,

그야말로 지방자치제가 낳은 새로운 인강형이었다.

그러니 박주사가 명절 때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아빠를 찾아와 굽신거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 오빠가 돌아왔다

 

p.99

세상에는 보물선의 전설을 믿는 사람,

직접 보물을 찾겠다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

그리고 그걸 재료로 돈을 버는, 재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나 이런 구조가 있다.

경주에 가면 신라 고분에 관한 전설을 떠드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그걸 듣고 밤을 낮삼아 야산 여기저기를

몸소 쇠꼬챙이로 쑤시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국 돈을 버는 것은 중개상인 나까마들과

인사동에 앉아 쌍화차를 시켜 먹는

노회한 공돌품가게 주인들뿐이다. - 보물선

 

p.209

나는 아직까지 뭘 해야 되는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내 인생은 언제나

무심결에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는 데 바쳐졌다.

제작비를 감독이 좀 갖다쓰는 게 왜 나쁜지

아직도 나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 일 때문에 차를 팔아야만 했고

선배의 마누라와 자다가 아닌 밤중에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신인들과 자고 다닌다고 욕하지만

내가 강간을 한 것도 아니고 서로 좋아서 벌인 일에 대해서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사정이 어려울 때는 그 여자들의 돈으로 지낸 적도 있지만

그것 역시 강도질도 아닌데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도덕적인 삶만이 순탄한 인생의 동반자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이 어찌 범인의 그것과 같으랴.

우리 예술가들은 위반을 통해서 배우고

고난을 딛고 성숙하는 존재들이다, 이거지. - 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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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에 뽑힐 정도로

지성인(?)들에게 그 지명도와 인기가 대단하다

나는 국어국문학과 학생 필수 현대 문학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으나

그 때 내겐 그냥 그랬으므로 "똑똑한 사람이야" 하고 말았다가

최근에 다시 제대로 그의 글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유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ㅋㅋ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함한 8편의 단편소설은 현실적이고

문장은 별다른 비유없는 단문이며 잘 읽힌다

난 항상 글을 쓸 때 직업 설정부터 딱 막히는데

다양한 직업군(전문고발꾼, 함바집 주인, 증권사 직원, 작가, 사제, 국회의원 보좌관, 영화감독)이 살아 숨쉬니 그저 부러울 따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오빠가 돌아왔다'는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다

그동안은 포스터가 안 끌려서 안 봤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확 보고 싶다

이승희 책부터 읽히고 나서 보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