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슬픈 예감>

 

 

p.8

이모는 사립 고등학교의 음악 선생이었다.

나이 서른에 독신, 언제부터인가 혼자 살았다.

'미혼에 소탈한 음악 선생'을 상상해 주었으면 한다.

아침에 출근할 때 모습은 그야말로 미혼에 소탈한 음악 선생 자체였다.

늘 짙은 회색 투피스를 반듯하게 차려입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검은 머리는 검정 고무줄로 꽉 묶은 포니테일,

거기에 굽 높이가 어중간한 구두를 신고 타박타박 걸어간다.

왜 흔히 있잖아요,

얼굴 생김은 유난히 고운데 촌스러워서 봐줄 수 없는 사람.

나는 이모가 '이렇게 하면 음악 선생으로 보이죠.'란 식의,

세상을 업신여기는 매뉴얼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 안에서 잠옷이나 다름없는 털털한 차림으로

느긋하게 지낼 때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세련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p.48

그는 친구가 많다.

데츠오가 전화를 끊고서 밖으로 나가고 나면,

갑자기 집 안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음 어느 한 부분이 '기다리는' 쓸쓸함이었다.

데츠오의 긴 손발과 발소리, 뒷모습,

그런 사소한 풍경이 집 안에 없으면 허전했다.

그냥 웃고, 전화를 걸고,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마음은 현관에 가 있었다.

특히 무슨 슬픈 일이 있었던 날에는 밤늦도록 침대 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데츠오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울리면 나는 안도했다.

방을 뛰쳐나가 어서 오라고 하지는 않아도,

나는 데츠오가 내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듬직하게 느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p.55

이모는 목욕 가운을 걸치고 머리는 말리지도 않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슬쩍 일어나 텔레비전에 다가갔다가

공포의 절정이 지나면 다시 바닥에 누웠다.

간혹 목욕 가운데 머리를 쓱쓱 닦고, 하품과 재채기를 했다.

나 역시 소파에 앉아 물론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화면 속의 단말마와 이모의 움직임을 대조하는 게 훨씬 더 흥미로웠다.

 

p.69

"아빠는 학자였는데, 기인이었어.

그래서 집 안에는 일정한 일상이라는 게 전혀 없었지.

기분이 내키면 온식구가 옷을 차려입고 나가 외식을 하고,

엄마는 비가 계속 오면 시장을 보러 가지 않아서,

다들 한 가지 빵만 오물오물 먹었고.

태풍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밤에는,

넷이 창가에 모여 앉아 하늘을 보면서 잠들었어.

여기 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지.

늘 충동적으로 출발하니까, 야영도 곧잘 했어.

산속에서 한 달이나 지낸 적도 있었고.

너의 능력을 재미있어 하면서, 카드를 맞추게 하는 게임도 했어.

칭찬해 주면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직 어린 녀석이 말이야.

음, 무민 골짜기의 생활과 비슷했는지도 모르지. 매일이 백야 같았어.

끝이 없고, 각자의 내면에는 평온함이 있었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아마 저주나 축복처럼, 내내 내 몸에 붙어 있을거야."

 

p.74

창밖 세계는 빛과 그림자로 또렷하게 나뉘어 있고,

초여름의 나무들이 빚어내는 무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햇살이 오후를 향하면서 강해진다.

나는 그렇게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 여름의 기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p.83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아슬아슬한 선에 있으면서,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 수단과 구실로 '남매간'을 이용했을 뿐인 듯하다.

엄마와 아빠가 집에 없을 때, 우리둘은 저녁을 먹고서도

식탁을 떠나지 못하고 끝없이 디저트를 먹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아주 귀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럴 때면 늘, 서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단둘이 있으니까,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p.105

어렸을 때는, 마치 비가 내리듯, 번지듯 빛나는

하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두 별이라고 생각하면 이유도 없이 슬펐다.

올려다보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득 메운 별의, 수억 개의 빛남.

 

p.129

요즘 들어,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저 단순한 정직함이 아니라

의지가 담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많이 경험한다.

가령 한때의 반짝임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변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순간에 모든 것을 담아 확고한 눈길로 호소하면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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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의 작품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그녀의 작품 모두를 알 것 같다

신비롭고 아련해 부서질 것 같고,

가루로 흩어질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

처음엔 아름답게 느껴지던 날씨 묘사가

문단 바뀔 때마다 나오니 지겨운 감은 있었으나

그 나름대로 배울 점이 있었다

햇살, 별빛, 구름, 따스함과 서늘함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데 한 몫한

왠지 모르게 슬프고,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고,

이상하게도 설레고, 왠지 기쁘다는 식의 아리쏭한 표현!!

(정말 많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이유도 없이......)

소설에 있어서는 명확한 것을 추구하는 내겐 불편한 문장이었지만,

바나나의 팬들은 아마도 그걸 사랑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