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방미진 <손톱이 자라날 때>

p.16

결코 예쁘지 않지만 끌리는 것.

볼수록 아름다운 것.

사람들은 그걸 매력이라고 부른다.

기주뿐만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누구나 그렇다.

못생긴 사람일수록 숨어 있는 매력이 많다.

내 옆에 있으면 시녀처럼 보이는

주근깨투성이 희진이도 가끔 반짝반짝 빛이 난다.

희진이가 웃을 때면, 희진이를 못난이로 만들던

그 주근깨들이 개구쟁이처럼 꺄르르 웃는 것만 같다.

그래서 희진이가 순수하고 귀여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매력들을 놀려 대서 단점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이 희진이나 기주의 매력을 안다고 해서

그 애들을 나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싫다.

누구나 다 나름대로 예쁘다는 게 나는 너무 싫다.

그 애들은 나를 돋보이게 해 주면서,

배경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 되니까. - 하얀 벽

p.62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차가운 손가락들이 심장을 더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삼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따뜻한 체온 속에서 차가운 내 몸도 서서히 온기를 되찾았다.

p.65

모두들 우리가 쌍둥이라

서로에 대한 애착이 강해 붙어 다니는 거라고 여겼지만,

사실 난 내 옆에서 그림자처럼 서서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주영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구역질 날 정도로 싫었다.

그렇다고 주영이가 날 좋아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붙어 다니면서 서로를 미워하고 괴롭혔다.

한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한쪽도 움직일 수 없는 샴쌍둥이처럼,

따로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우린 한 쌍이었으니까.

어쩌면 우린 정말 샴쌍둥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육체가 아닌 영혼이 붙어 버린 샴쌍둥이.

어쩌다 우린 영혼의 일부분이 붙어 버린 걸까?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영혼을 섞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차지하고 싶었던 걸까? - 난 네가 되고

p.94

엄마는 신음 같은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던졌다. 온 힘을 다해서.

하지만 의자는 슬쩍 들렸다 쭈르륵 미끄러졌을 뿐이다.

상담 받는 사람을 위해 푹신푹신한 쿠션을 잔뜩 넣어 만들어 놓은

커다란 회전의자는 엄마가 집어 던지기엔 너무 무거웠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피식 웃을 수도 없을 만큼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광경이었으니까.

엄마는 건드리기만 해도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모습으로 덜덜 떨며 서 있었다.

그깟 의자를 들었다 놓는 일에

남아 있던 모든 힘을 다 써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p.105

싱크대에 몸을 바싹 붙이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더듬는 아빠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싱크대 밑으로 들어간 팔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리거나,

뭔가에 뜯어 먹히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싱크대 밑에 있는 것은 고작해야 죽은 쥐일 뿐인데.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빠는 귀찮은 게 아니라 무서웠던 거다.

아빠도 쥐가 무서웠던 거다. 쥐의 시체가 무서웠던 거다.

아빠가 쥐를 무서워할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곱게 자라 순해 빠진 아빠가 그런 걸 해 본 적이 있을 리 없는데 말이다.

쥐를 잡는 일도, 집을 구하는 일도,

파리 떼처럼 꼬여 드는 사람들을 겪는 일도.

아빠는 모든 게 무서웠던 거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한 거다.

겁내는 꼴을 우리에게 들킬까 봐.

p.119

아빠와 친구들은 그 집에서 밤늦도록 놀았다.

일을 마치고 온 외할머니가 라면을 끓여 주었는데, 하나만 끓였다.

사람은 여럿인데 왜 하나만 끓였을까?

궁금해서 물어봐도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하나만 끓인 라면이 퉁퉁 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렇게 해야 양이 많아지니까.

하지만 아무리 불렀어도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라면을 먹고도 너무 배가 고파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또 먹었다.

어쨌든 아빠는 불을 대로 불은 라면이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빠는 라면을 불려 먹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그건 가난에 절어 있던 사람과 그게 특별한 경험이었던 사람의 차이다.

- 붉은 곰팡이

p.179

그건 바로 싫은 녀석을 둘로 만드는 놀이다.

내 목표물은 주로 인기가 많고 괜찮다는 평을 받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건 그 아이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모든 게 가짜다.

나는 정의로워, 나는 이해심이 많아,

그럴듯한 자기 모습을 즐기며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인기가 떨어질까 봐 벌벌 떠는 겁쟁이들이다.

서로 위해 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실패하길 바라는 비열한 놈들이다.

그게 그 녀석들의 진짜 모습이다.

난 그런 인간들이 너무나 싫다.

목표물이 정해지면 일단, 그 녀석이 혼자 있을 때를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가식적인 인간들일수록 혼자 있는 걸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물의 사냥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차피 별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 고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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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청소년 저작 및 출판 지원 사업’ 당선작이라더니 ㅎㄷㄷㄷ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영화 <시>를 보면서도 느낀 건데 요즘 애들 참 무섭다

그리고 청소년 도서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읽은 허순봉 작가의 <쌤통이다> 시리즈와는 참 많이 다르다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꼬마 천사 수리동, 수리순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