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화차>

 

p.8

직장이라는 것은 스포츠와는 달라서,

퇴장해 있는 동안 다른 선수가 그 자리에 들어가는 아니라,

규칙 자체가 바뀌어 자신의 위치가 흔들려 버리는 식이 대부분이다.

혼마 슌스케는 오늘 처음으로

휴직을 괜히 했다는 씁쓸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p.106

편의점 카운터에는 발랄해 보이는 젊은이가 있었지만

혼마는 바커스로 발길을 옮겼다.

편의점이란 곳은 점원들이 자꾸 바뀌고, 고독한 사람 또는

고독이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에서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

혹시 흘린다고 해도 그 정보를 주울 사람 또한 없다.

혼마는 강도사건이 있었을 때 집중적으로 편의점만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곳의 점원들이 손님들의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란 적이 있다.

 

p.147

"5년 전에 개인파산 수속을 처음 밟으면서

부채가 늘어간 경과를 쓰게 했을 때

쇼코 양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빚을 만들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라고요."

 

p.150

이카리는 동물을 아주 좋아한다.

학생 시절, 허름한 아파트에 살 때도

집안에 있는 쥐 한 마리 한 마리한테 이름을 지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쥐의 발소리만 들어도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마룻바닥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천장을 쳐다보면서,

"어, 지금 저 소리는 크리스틴인데 말이야.

요새 저녀석 알랭하고 사귀는 것 같아"라고 하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신병원에다 집어넣어야 할지 진심으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p.162

직장 여성들이 20대 후반이 돼서도 심부름 수준의 업무만 하고 있다 보면,

그 나름대로 비참한 기분에 빠질 것이다.

예전에는 거기서 탈출하는 수단으로 결혼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학, 독립, 사업 등 여러 가지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그것도 돈이 드는 일이다.

그것도 엄청난 돈이.

그래서 한편으로 나이 많고 씀씀이 좋은 사업가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p.186

"긴자나 록본기에 있는 고급 부티크에 가면요.

디스플레이 돼있는 옷디 있잖아요.

벨트랑 액세서리까지 전부 코디네이트 해서

마네킹에 입혀 놓은 것 말이에요.

그걸 말이죠. 우아하게 손가락 하나로 가리키면서,

'이거 전부 주세요' 라고 말하는 거예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혼마는 웃으면서 듣고 있었지만 곁에 있던 이카리가,

"그런 소릴 한다는 게 바로 시골뜨기라는 거야. 센스가 없다는 증거라고. 오히려 점원들의 웃음거리만 될걸" 하고 말하자

그녀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p.189

이렇게, 죽은 자는 산 자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벗어 던진 윗도리에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머리빗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

 

p.234

현실적으로 알리바이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일반인보다는 형사들 쪽이다.

아무리 의심스러운 상대라도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면,

조사하는 측에서는 용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의외로 완고해서

일단 이 녀석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면

알리바이 같은 건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다고 태연하게 말해 버린다.

일단 한번 죄를 뒤집어쓰면 나중에 무죄가 입증되어도,

지역의 주민이나 친족들은 여전히 범인 취급을 하면서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일 것이다.

과학수사도 마찬가지다.

형사는 혈액형의 미세한 차이에도 신경을 쓰고 수사 대상을 바꾸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걸 어떻게 믿느냐면서 코웃음을 쳐버린다.

 

p.282

의지가 강해 보이는 신조 교코의 시선.

구리자카 가즈야의 곁에서, 또한 로즈라인의 가카세 앞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의 그 비정함. 가벼운 몸짓.

그런 면이, 그녀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외롭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신조 교코는 외로웠고 혼자였기 때문에

타인의 신분을 가로채는 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는 남가가 있었다면,

그녀는 신조 쇼코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협력자의 손을 빌려 신조 교코로서 도망갈 일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름이란 타인들에게 불리고 인정받음으로써 존재한다.

곁에서 신조 교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녀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는 펑크 난 타이어를 버리듯

절대로 신조 교코란 이름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름에는 사랑이 스며 있으니까.

 

p.308

옛날에는 아주 간단했어요.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자력으로 꿈을 이루든가

현 상태에서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잖아요?

그렇지만 요샌 달라요.

꿈을 이루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자니 너무 아쉽고,

그래서 꿈이 이루어졌다는 기분에 그냥 빠져들어 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한 방법이 지금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쇼코의 경우는 그게 우연히 쇼핑이나 여행같이

돈을 쓰는 쪽으로 간 것뿐이에요.

그런 걸 가볍게 도와주었던 게 바로 신용카드와 사채였죠.

 

p.309

너 구멍가게에서 푼돈을 빌려다 쓰는 처지라도

쇼핑을 다니고 사치하고 고급품에 휩싸여 있으면

자기가 꿈꾸던 럭셔리한 인생을 실현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행복하지 않았니

 

p.317

구라타 집안과 신조 교코 사이에는 즐거운 추억이 있을 리 없다.

애초부터 일이 쉽게 풀리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다

그렇게 정중한 부탁을 받고 보니 더욱 난감해졌다.

이런 경우에는 그쪽에서 화를 내며

'말도 안 돼. 그런 짜증나는 여자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라며

소리라도 쳐주는 것이 훨씬 대응하기가 쉽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말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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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쯤 읽어보고 싶었던 미미 여사의 책을 선물 받았다 WOW

일본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칭호답게 흥미진진한 스토리~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란 뜻의

<화차(火車)>는 완벽하게 숨고 싶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다

 

세키네 쇼코, 가짜 쇼코, 진짜 쇼코, 신조 교코

진짜 쇼코가 세키네 쇼코고 가짜 쇼코가 신조 쿄코인데

쇼코랑 교코랑 둘 다 코코거리니까

쇼코가 교코인지 교코가 쇼코인지 완전 헷갈렸다

쇼코, 교코 나만 헷갈리나?

 

이 작품은 93년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마찬가지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한 철저한 자료 조사

치밀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이 책의 교훈 : 사채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