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은 일제 강점 시대 조선인치고는 꽤 출세한 사람이다. 용정에 있는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범생이의 길을 걸었다고 할까? 큰 어려움 없이 이념도 독립도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여자가 나타난다.(이런 점에서 남녀가 만나면 대개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정희라는 여자. 김해연은 나카지마 중위와 어울리면서 중위에게 한 소리 듣는다. 사랑도 해보지 못한 놈이라는 말투로. 그에 자극을 받았을까? 김해연은 이정희를 알게 되고 마음에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몇 번의 데이트도 못하고서 이정희의 죽음(자살) 소식을 접한다. 사랑의 감정이 컸던 만큼 회복하는 시간은 그의 직업을 앗아가고 그를 아편쟁이로 만든다.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채로 그는 한 사진관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여옥이라는 여자를 만나 다시금 행복한 사랑을 꿈꾸자마자 그녀의 다리를 잃게 만드는 토벌대에게 희망을 빼앗긴다. 아..더 이상 김해연이 무엇이 남았을까.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역사를 가미한 사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사랑은 아니지만 마음에 있는 말 아끼고 아끼면서 한마디 쉽사리 하지 못하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사랑. (그래서 그랬던가. 김연수님은 이 책을 천천히 읽으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30년대 민생단 사건을 가지고 진행된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기에 책을 통해서만 아는 나이기에 그 당시 공산당에 대해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중국 공산당, 민족주의 공산당, 소비에트 공산당에 속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믿지 못해 죽이는 내부 살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알았던 친구들이 커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되고 그 과정에 이정희와 김해연의 사랑이 있고..

 나의 우리말에 대한 무식함을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아마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메모하고 나중에 찾아보는데 가장 많은 단어를 메모지에 적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면서 어찌 나는 이렇게 어휘에 무식한건지. 역으로 이러한 것 때문에 독자들을 잃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소설이란 공부하면서까지 읽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아니므로. 그 시대 그 장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삶/죽음으로 압축된다. 그러기에 민생단 사건을 통해 그렇게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이 생긴것이고. 때론 삶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굴복하고 마나보다. 그 잘난 편가르기가 뭐라고..

 p.s. 표지 에곤 실레 그림 마음에 든다. 존 어빙의 <가이프가 본 세상> 역시 에곤 실레의 그림이 책 표지이던데. 표지가 예쁘면 구매하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예쁜 표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