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설을 읽고 무척 놀랐습니다.

 

이미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라면 이건 미스테리 소설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른바 <증명시리즈>로 불리는 이 작품들은 어느 한 관록의 미스테리 소설가가 범죄보다 더 차원 높은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그런 것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인 <모리무라 세이치>는 <인간의 증명>에서 느껴졌던 인간에 대한 고찰과 감동을 <야성의 증명>을 통해 다시금 돌려세운 듯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아가고 있지만 실은 우리 인간 역시 인간 이전에 한 종의 동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가지고 있던 동물로서의 야성은 최첨단 현대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과 관습, 사회, 문화, 법 등으로 꼭꼭 숨겨져 있지만 이러한 야성은 언제든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빈번히 분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찌 인간으로서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끔찍해 하는 모든 일들은 실은 머리 좋은 동물이 잔인한 야성을 드러내어서 행한 일이라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즈사와는 정의의 화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물도 아닙니다. 주위의 환경이 그를 자극하지만 않았다면 그 역시도 우리네 평범한 이웃이자, 좋은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영리한 작가는 이렇게 평범한 세상에서는 인간의 야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오바 일당의 일인 독재로 불법과 폭력이 만연한 가상의 도시 <하시로>입니다. 경찰도 언론도 폭력조직도 모두 오바가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비정상적인 공간 하시로시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치는 아즈사와에게 남은 미래는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야성의 증명>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 소설은 아즈사와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리다보니 왠지 하드보일드적인 성격마저 느껴지고, 스토리 자체로도 무척이나 재밌고 흥미진진합니다. 여러 장르에서 쓰여져서 식상하지만 언제나 먹히는 도망자, 람보류, 연인의 복수 등 낯익은 모습들이 겹치면서 소설로서의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야성의 증명이라는 작가 본연의 제시어를 잠시 망각할 정도였습니다. 읽는 재미 차원에서는 <인간의 증명>보다 훨씬 낳은 듯 하며,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실제로 일본에서는 당연히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 소설계에서 이룰 것은 모두 이룬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그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고층의 사각지대> 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작품은 이른바 본격 추리소설 계열이었다고 보여지는데 <증명 시리즈>를 읽어보면 얼마나 그의 작풍이나 작품세계가 달라졌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한편으론 몹시 부럽기도 하네요.

 

인제 다음 시리즈 <청춘의 증명>을 읽어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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