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절판이 되어 국내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암흑관의 살인> 시리즈를 읽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하지만 지금도 중고책 시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워낙에 <관시리즈>를 좋아해서 <십각관의 살인>을 읽은 이후 여러 시리즈를 섭렵해왔습니다. 이제 <인형관의 살인>과 <기면관의 살인>만 읽으면 <관 시리즈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겠군요.

 

시리즈마다 분명 편차도 심하고, 완성도도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가 좋은 이유는 본격 미스테리라는 한 길만 고집해온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집념이 시리즈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격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있는 저에겐 이 시리즈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호부를 떠나 저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푹 빠져 즐길 수 있는 안식처였던 셈이죠.

 

특히 추운 겨울날 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추리소설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주신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암흑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중에서는 상당한 문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관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차별점들이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과연 무엇이 이토록 이질감이 들게 하는 것일까요?

 

<암흑관의 살인>을 두고 이른바 <관 시리즈> 2기의 시작이라고들 말합니다. 작가도 <십각관의 살인>에서 시작해 <흑묘관의 살인>까지 총 6권의 작품을 1기라고 하는데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알고 있듯이 나카무라 세이지라고 하는 기묘한 건축가가 만든 저택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6작품은 모두 본격 미스테리, 즉 사회성을 일체 배제하고 주어진 공간(여기선 저택 즉 관이라 할 수 있겠죠)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트릭을 탐정나 등장인물들이 해결하는 것을 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1기를 마치고 2기를 시작하는 입장에선 아야츠지 유키토는 아마도 무언가 이 시리즈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들어간 요소는 바로 '호러'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인정받는 중견작가로서 필력이 절정이 달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작품에 쏟아붓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장장 3권(그것도 각 권마다 엄청 두꺼운...)이라는 대작을 만들어 낸 것이라 상상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앞의 6개 관 시리즈보다 훨씬 대중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도 거의 다른 소설 한권 분량을 읽어야 될 정도로 작가의 묘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저의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박수를 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한장 한장 넘기는 것이 고통일 정도로 악전고투가 시작되더군요...

 

책의 제목마냥 어둠의 긴 터널을 뚫고 사건이 종말로 치닫고 부터서야 드디어 제 갈길을 찾은 초보 여행자 마냥 신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역시 그랬구나'라는 감탄으로 끝을 맺었지만 지나온 험난한 길을 생각하니 이 작품이 마냥 좋아할 만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친구랑 얘기할 때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의무적으로 계속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랄까...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한 권 짜리로 응축해 나왔다면 정말 명작일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작품이 그러면 가치가 없느냐면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야츠지 유키토>나 <관 시리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작품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의무감에서라도 말이죠. 왜냐면 이 작품은 시리즈 2부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시리즈의 A~Z까지를 총정리하는 족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스테리 측면에서도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작가가 누군지 아시면 그 점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제 막 어둠에서 빠져나온 기분...창 밖은 간만에 햇살이 비추고 있네요^ 이제 다음 <관 시리즈>를 정복하러 가보겠습니다.

관시리즈, 뱀파이어, 저택, 암흑관, 아야츠지유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