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좀비가 나오는 종말문학은 다른 미스테리 장르에 비해서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일단 비현실성이 있는데다 결국엔 좀비들을 피해 도망다니고 살아남기 위한 모습을 그려내는 생존 체험기가 될 것이라는 스토리의 공통점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소년 시절부터 봐온 좀비영화에서의 천편일률적인 좀비 묘사에 다소 지치기도 했구요.

 

하지만 좀비 역시 세월이 가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결국 좀비 역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죠). 종말문학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자리매김 함에 따라 국내외를 불문하고 수많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고, 작가의 역량에 따라 매우 뛰어난 작품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생존기를 뛰어넘어 절망속에서 꿈트는 희망을 얘기하고,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나타나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대해 잘 묘사하는 작품들을 보면 이제 좀비가 등장하는 종말문학 역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페인의 <마넬 로우레이로>라는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쓴 <종말일기Z>는 소설로서는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제가 처음 읽어보는 좀비소설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세계대전Z>나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같은 작품들도 읽어보지 않았기에 한편으론 생소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종말일기Z>는 참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장을 손에 놓기 힘들게 할 정도로 스토리가 긴박하게 전개되다 보니 꽤나 두툼한 책을 모두 독파하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말일기Z>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주인공 역시 힘없는 한명의 운좋은 사람일 뿐. 살기 위해 도망다니보니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이지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도리어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좀비소설의 기본인 치밀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책만 넘겨도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이 펼쳐지는 듯 세밀한 묘사가 대단합니다. 구역질이 날 정도의 묘사는 독자가 좀비세상 한 가운데에 떨어져 버린 절망감 마저 안겨주는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감정이입이 무척 잘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두 가지 좋은 감정이 생기는데 하나는 '참 나는 지금 무지하게 행복하구나'라는 생각과 생존이라는 절박한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희망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에 있어 무척 소중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극한 상황... 그야말로 바로 죽음의 그림자가 내 곁에서 춤추는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말문학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라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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