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 책의 탐독시간이 너무 길어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사정이 된 이유는 책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 신상의 일 때문이기에 더욱 할말이 없게 되었네요. 거의 2달을 읽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책은 책장에서 밖에 나와 돌아다닌 시간까지 덩달아 길어지다보니 표지가 벗겨질 지경까지 되어 버렸네요. 책한테도 너무 미안합니다.

<야마구치 마사야>라는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작가가 쓴 소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특이하게도 전형적인 본격 미스테리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참 특이하죠?

책 제목만 놓고 보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나 <데드 오어 얼라이브>같은 좀비류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시체가 살아난다는 설정만 제외하고는 완벽한 본격 추리소설입니다. 따라서 추리 본연의 세계를 탐구하는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꽤나 재미있게 즐길 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소설은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는 다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이 약간 변형된 본격 추리이다 보니 사실 공정한 게임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인 본격 추리의 룰을 상당부분 어긴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가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시체는 조금 있다가 살아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살아난 피해자가 '저 녀석이 나를 죽였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겠죠. 그래서 작가는 실은 죽은 자 조차 자기를 누가 죽였는지 모르던지 아니면 알아도 말을 하지 않는 일로 처리합니다.

그래서 사건은 더욱 미궁이 되지만 왠지 긴장감은 약간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죽어도 살아난다고 하니 독자의 입장에서 죽는 다는 것이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고, 코미디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가 그래서 작품평에 이런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솔직히 긴장감은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재미가 없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본격 추리소설에 신선한 변화를 준 역작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대단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산 사람처럼 행세를 하면 죽인 자나 죽은 자나 다른 사람이나 서로가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됩니다. 따라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 소설자체 사건은 금방 해결되거나 아니면 일어날 수 조차 없는 일이 되겠지만 죽은 자가 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사건은 그야말로 고도로 어려운 추리를 요하게 됩니다.

솔직히 반틈 이상 읽었을 때는 '이렇게 묘하게 사건을 꼬이게 해놓고 결론이 납득안가면 두고봐라'는 오기도 생겼었는데 마지막 결론을 보자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역시 작가와의 싸움은 항상 지기 마련인가 싶기도 했구요.

또 한가지 재미는 장례문화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죽음에 대한 철학입니다. 엠바밍이라는 독특한 미국식 장례문화 -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죽은 이를 보낼 때 관뚜껑을 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시체가 무척 평온하고 깨끗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워야 겠죠. 그래서 하는 사후 시체 처리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에 대한 상세한 설명, 그리고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세계에 대한 관찰 등도 흥미로운 내용들 입니다.

오랜만에 철학소설이 아닌 추리문학을 통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만 공허해진 느낌도 듭니다. 죽은자가 다시 되살아난 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고 죽음은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곧 삶의 일부라는 것을 새삼 알게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누군지 모른다면 미국 사람이 쓴 미국 소설이라 느껴질 정도로 동양색을 탈색하는데도 꽤나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 소설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은 여기에도 살아있는 것 같군요. 결코 쉽게 보면 큰 코 다칠 본격 변형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입니다. 

시체, 묘지, 좀비, 영구차, 관, 엠바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