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맹지도(유교), 석가지도(불교), 야소(천주교) 더불어 이슬람교 등등...

결국 모든 것이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의 다른 모습들일텐데...역사를 심찰하면 정말 무던히도 많은 이들이 '너는 왜 내가 믿는 것과 틀려?'소리를 들으며 죽어가야 할까? 이러한 무의미한 싸움과 죽음은 실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종교가 우리 인간세상에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래도 살육은 있었겠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나는 이 생명을 끊어도 절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뻔뻔한 살육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애시당초 미스테리로 접근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작품 자체는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며, 조선시대 후기의 혼란상이 참으로 제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대는 자꾸 변하려 하는데 그 변화의 물결을 권력과 살인으로 막으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큰 바람의 흐름이 서로 얽혀 지구도 삼킬 듯한 폭풍이 되어버린 목성의 대적점처럼 이 갈등의 정점에 선 것이 바로 열녀문입니다.

김아영. 급사한 남편을 따라 자결한 이 여인. 공맹지도로 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이자 열부로 추앙받아 당연히 열녀문을 세워 가문(남편 가문)을 빛낼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 뭔가가 수상합니다. 죽음에 얽힌 비밀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이 여인의 비밀. 그리고 그 뒤에는 공맹지도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갈등과 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 김탁환씨는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무리 고문헌을 많이 참조하시고, 여러분들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조선 후기의 사회상, 말투와 언어, 글월, 시문 등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바로 어제까지 살다 오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질서가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조선후기의 혼란상에서 모티브를 찾아 그것을 미스테리가 가미된 역사소설로 자연스럽게 승화한 것도 참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미스테리 소설 측면에서도 특별한 독자 추리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상당한 수준의 추리를 구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데 사족이라고나 할까요? 이 소설에서 제가 제일 실망한 것이 하나 있는데...그것은 결말입니다. 악인들의 행동에 치를 떨며, 억울하게 죽어간 여인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진한 감동의 여운을 즐길려는 찰나에...이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왠지 화가 났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라는 공약때문에 속쉬원하게 말 못해 좀 답답합니다)

이러한 결말로는 악인에게도 동기가 부여되어버리고(그것이 물론 나쁜 행동일지라도), 나는 신을 믿으니 너희는 다 잘못이고, 나는 다 옳다는 별로 반갑지 않은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결론이 되어 버렸습니다. 솔직히 급사한 임거용을 누가 죽인 건지 우리는 정말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내가 믿는 것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도 않고,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고싶고, 내 아이들도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착하고 평화롭게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김탁환, 열녀문, 실학, 조선후기, 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