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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서재를 염탐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그 서재의 주인은 소설가를 목표로 책을 읽고 있는 선비와 같다. 내가 그를 안것은 10년이 넘어간다. 그것도 오직 온라인에서 말이다. 아무튼 질긴 인연이다. 통성명을 한적이 있으나 곧 교류가 단절되고, 나는 그를 계속해 지켜봐오고 있다. 그는 글쓰기에 능하고, 또 책을 좋아한다.  그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한 피시 통신 리딩(독서)게시판에서 그를 알게 된 이후로, 어언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간 그와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그는 한번의 공무원 시험을 패스했으나 곧 사표를 던졌다.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 였다고 스스로 강변했으나 새로운 직장에 취업은 실패했고, 그는 10년전 소망했던대로 소설가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다. 아무튼 그는 나보다 책읽기를 먼저 시작했고, 독서량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우리의 질긴 인연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설명해주는 책같단 생각이 든다. 그가 사실 오래도록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인문학이란 영역을 알기 시작한 그 시절에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책읽기를 시작한 나는 새로운 인식의 영역들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재해석되고, 아무런 의문조차 들지 않았던 세상은 숱한 의문덩어리로 변질되고 있었다. 삶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질문을 통해 재해석되고 재인식되어야 하는 과제로 다가왔다. 내게 처음 삶과 자아를 되돌아보게 한 것은 바로 인문학적 독서였다. 그리고 그 의문은 사회로 확장되었고, 세상과 우주로 더 넓혀졌다. 20대, 내 혼란한 정신속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것은 그러니까, 풍요로운 인문학적 세계였던 것이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의 책을 읽으며 그가 시도했던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다라는 이 프로젝트(클레멘트코스)의 논리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클레멘트코스를 통해 원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내 경험을 근거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시카고 대학을 열세살의 나이에 입학한 수재였다. 소설가로부터 사회비평가, 언론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 독특한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의 한 중범죄자 여자교도소에서 한 여성수감자와 만나면서부터다. 그 여성수감자는 감옥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철학을 전공으로 대학과정까지 마친다. 어느날 그와 면담하면서 쇼리스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 이 질문을 받은 그녀는 이렇게 답변한다. "우리 아이들(거리의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부유한자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이 답변을 들은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다. 이 여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가난한 자들, 못배운 자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을 시켜서 그들의 정신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쯤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성의 답변이 독특한 것은, 가난을 경제적인 이유들에서 찾지 않고 그들의 인문학적 교양의 부족에서 찾은 것 때문이다.

이것은 가난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과도 거리가 있다. 대게 국가정책상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기능'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게 일반적인 대응이었다. 그리고 쉽게 생각해봐도 당장에 궁핍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직업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이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얼 쇼리스는 그 여성과의 대화에서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된다. 나라에서 직업교육을 시킨다면, 아마도 당장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들을 진정 가난에서 구제하진 못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그 가난은 그들에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될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안고 있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해지는 것. 이것이 오늘날 세상이다. 이미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클레멘트코스는 노숙자들과 빈자들에게 철학,역사,사회, 정치,예술을 가르친다. 그것도 대학 교양과목 코스에 버금가는 교수진들과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얼 쇼리스는 이같은 실험을 미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이다. 그 과정은 남미 마야족의 후손들에서부터 알레스카의 인디언, 태평양을 넘은 한국의 노숙인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이 실험은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의 노숙인들에게 클레멘트 코스를 가르치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했다. 한 노숙인이 어느날 갑자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공자를 읽는다.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을것 같은가?   얼핏 보기에, 그는 여전히 가난했으나 더이상 그는 길잃은 빈자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샛방을 얻고 작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 빈자는 언제든지 저 밖의 세상으로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자라나고 있는듯, 희망이 가득차 보였다.

"클레멘트 코스의 예비수강생들에게 강연할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여러분을 록펠러처럼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분은 록펠러보다 더 큰 부자가 될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록펠러 집안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앞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면, 여러분은 `부'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나를 포함해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나 코스 책임자들 그 어느 누구도 수강생들에게 인문학이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하진 않는다. 여기서 `정치적 주체로 선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이 된다는 뜻이다." - 본문 p.35

노숙인들조차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변화할 수 있다면, 인문학이 인간사회에 얼마나 큰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몇년전부터 대학에선 인문학의 위기니, 인문학이 죽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사회에 나와서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만 관심을 가지려하니 교양과목에서조차 인문학이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교양인을 양성해내지 못하고 전문직업인을 양성해내고 있다. 이것은 대학 교육의 후퇴와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교양을 대학에서 쌓지 못한다면, 구태여 우리가 대학에 갈 필요가 뭐가 있을까? 평생교육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대학에서 그 나이에 쌓아야할 교양은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로 얻어지지 못한다. 20대의 나이에 내게 인문학이 끼친 영향은 물론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으나, 오늘 이 시간까지도 그것이 내게 주고 있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인문학적 교양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내게 인식의 균형을 제공함으로써, 맹목적 신앙인이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주었고, 타 종교을 관용과 상생의 정신으로 바라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신앙을 건전한 일상속의 삶 가운데 키워가게 함으로써 신앙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에게 인문학적인 교양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맹신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일 뿐이다.

이 책은 오늘??나 많은 노숙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하룻밤을 지새울 따뜻한 방과 뜨거운 음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그러한 일시적인 은전이 아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회복시킬 인문학적 교양을 공급해주는 일이다. 삶을 단순한 생물학적 유지나 지속으로 바라보게 할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이냐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같은 의미에서, 얼 쇼리스의 이 책은 이 시대 모든 빈자(貧者)들에게 진정한 희망의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책이라 부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