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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득이>는 놀랍도록 `재미 없는' 영화였다. 놀랍도록 이란 표현은 `생각보다'로 바뀌어도 좋다. 하지만, <완득이>에 편견 같은 건 애초 없었다. 유일한 편견이라면 오직 원작인 소설 김려령의 <완득이>가 만장일치로 웃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 뿐이다. 소설이 원작이긴 하지만 이 리뷰는 오직 영화로 탄생한 작품에 대한 것임을 밝힌다. 원작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분야다. 그래 차라리 영화를 찍을 때, 감독은 이 소설을 잊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소설속에서 생성된 웃음코드가 그대로 영화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가 소설에서나 가능한 웃음을 곳곳에서 억지로 유발한건 감독의 책임도 있다는 말이다. 왜 재밌는 원작을 가져다 재미없게 가공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가난하고 불우한 고2 남학생의 성장 환경을 통해 관객은 이 사회의 약자가 살아가는 토양을 확인한다. 산동네, 옥탑방, 곱추 아버지, 이혼가정, 젖먹이때 집을 나간 필리핀 엄마, 수급자로 햅반에 라면으로 연명하는 주인공. 이 모두는 누군가의 누추한 현실이다. 리얼리티가 짙게 묻어난다. 행복와 웃음이라곤 먼 환경, 거기서 웃음을 끌어내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모든 악조건을 다 보여주고 영화는 이 환경에서 웃음을 끌어내려고 한다. 어떻게? 바로 비현실적 캐릭터를 통해서다.

"얌마 도완득"을 외쳐대며 불우한 완득이를 갈구는 사회선생이자 담임 똥주. "씨불놈아"를 연발하는 이웃집 대머리 아저씨. 가장 억지스러운 장면은 완득이가 똥주의 죽음을 바라며 교회를 찾아 기도하는 것이다. 말투가 거칠고 현실에선 보기 힘든 고등학교 담임이지만, 이웃집에 세들어 살며 완득이에게 햅반을 갈취하는 똥주 선생은, 완득이와 자주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똥주는 완득이를 "얌다 도완득'이라 불러댄다. 매번 이름을 불러주는 것 자체가 외롭고 힘든 아이에겐 누가보아도 관심과 사랑으로 보이지만, 완득이는 똥주를 싫어한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 그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왜 기도하는지 좀체 의아하다. 어투와 본심을 구분조차 못한다는 것인가?

귀가 예민한 이웃집 대머리 아저씨는 다닥다닥 붙은 옥탑방에서 나와 똥주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시끄러워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씨불놈들아 조용히좀 해"라고 응수한다. 이 아저씨의 욕짓거리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빵 터진다. 영화 내내, 관람석이 웃음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 코메디가 맞구나. 나도 실은 웃었다. 그런데, 재밌어서 웃은게 아니고 어이없어 웃는 웃음 같은 것이라고 할까? 웃음코드가 저렇게 빈약하고 뜬금없어야 되겠는가?

대놓고 웃기려는 영화니까, 웃어줘야 하니까 사람사이에 묻어가며 웃을 수 있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영화는 영화 전체가 판타지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 <완득이>처럼, 불우한 현실을 리얼하게 모사하면서 웃음을 주려한다면 좀더 진중해질 필요가 있고 웃음조차도 논리적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누추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배경으로 깔고, 거기에 대고 무턱대고 코메디를 입혀 놓으면 관객의 웃음은 비웃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웃는 일이 발생한다고 할까?

영화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촬영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제작비가 부족했던지 좀체 스테레오 사운드가 아니라 모노 사운드로 들린다. 요즘에도 영화를 이렇게 녹음하는지 의아했다. 대사들과 배경음에서 원근감을 느낄 수 없다. 귀를 쫑긋 세워야 할 판이다.

내가 헷갈린 것은 이 영화가 어설프게 사회적인 메세지를 바탕에 깔려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메세지를 담으로 했다면, 영화는 웃음 코드를 삭제하거나 자중했어야 하지 않나? 현실은 코메디처럼 낭낭하지 않고 더군다나 이런식으론 공감할 수 없으니까. 똥주 선생처럼 부르주아이면서 누추하게 살아가길 선호하는 착한 부자는 세상에 흔치 않다. 배부른 히피같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원래 히피는 배까지 고파야지 정상이다. 고등학교 담임을 똥주처럼 한다면, 그는 아이들에게 비디오로 찍혀 인터넷에 올려지기 전에 먼저 교원평가에 빵점을 받고 교장에게 짤리고 말 것이다. 완득이처럼 삐딱하게 나아가는 애들은 똥주의 거친 입담에 주먹으로 답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 모든 부조화를 웃음으로 덮으면서, 현실을 왜곡한다. 완득이에게 동정심이 이는 것은 아직 그가 17살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해 시간이 지나면 그는 성년이 될 것이고 그의 가난과 불행은 이제 진짜 시작될 것이다. 청소년기의 불행은 자산이 되어, 성인이 되어선 진짜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땐 더이상 똥주처럼 비현실적인 선생은 그 옆에 다가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것이고, 대학도 나오지 못한 완득이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선택 해야할 시점에 다다를 것이다.

웃음은 순수하다. 거짓과 왜곡이 섞여들면 웃음은 사기가 된다. 이 영화를 보며 왜 웃어야 하는지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피흘리는 사람, 하루하루가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웃음은 있다. 그가 낙천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그는 현실적 무게를 웃음으로 가볍게 하는 마술을 보여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보며, 즐겁게 웃을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다고 위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비겁한 웃음이다. 이 영화가 결코 즐겁지 못한 이유는 이 비겁한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부르주아 똥주가 아니다. 너처럼 돈없고, 가난하고, 머리 나쁘면 공부하지 말고 킥복싱이나 하라고 조언하는 선생이 아니다. 야간 자율 학습은 오직 자율로 맡기고, 대학문제는 너희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쿨한 선생도 아니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그는 현실에 없는 캐릭터다. 현실에 없는 캐릭터가 웃으면서 무척 현실적으로 쿨하다. 가난한 현실에 불만갖지 말고, 그냥 숙명인냥 받아들이라고. 절망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가라고, 속삭이고 있다. 이게 답일 수 있을까? 똥주가 불온한 이유는 그의 쿨함 속에 감추어진 이 수구와 보수적 성향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착한 부르조아니 더 헷갈릴 수밖에 없다.

똥주는 만인을 즐겁게 하는 유머러스하고 착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불온하다. 완득이에겐 더더욱 해롭다. 완득이는 `시민'으로 커 나가야 한다. 자신의 누추한 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생길 수 있다. 똥주가 생각있는 선생이었다면, 그의 현실을 바꿔주진 못해도 그를 도서관으로 이끌긴 했을 것 같다. 현실이 가난하더라도 정신은 깨어 있으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가 가르치는 자본가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교과서가 아니라 책에서 배우라고 했을 듯 하다.

지금 웃자가 만든 영화 한 편에 너무 심각한 메스를 들이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난 이 영화를 보고 웃기지 않았다. 현실적인 소재들을 가져다 웃음 코드로 바꿔내는 재능에는 감탄했지만 그 이유와 논리에선 반기를 들고 싶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한가하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땅엔 거짓과 꼼수가 판을 친다. 이 영화를 보며 `송구스럽게' 5공화국 시절 국민을 희롱했던 3S정책- 스크린(screen:영화), 스포츠(sport), 섹스(sex) 또는 스피드(speed) - 이 연상되었다. 누추한 현실을 웃음으로 가리고자 하는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객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웃음의 부조화도 커가는 듯 하다. 영화속 어떤 웃음이 진정 건강한 웃음일까?

2011.11.12

개츠비의 영화읽기 17

이한, 완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