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미술가에 대한 애착은 베르메르에 이어 이젠 구스타프 클림트로 옮겨왔다. 어렸을적 전집으로 산 미술가 여행을 심심할 때마다 꺼내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클림트의 작품들에 대해 감상적으로 풀어놓은 이 책을 선택했다. 뭐, 늘 그렇듯 주관적인 풀이에 툴툴거리면서 대충대충 읽어나가려는데. 정말 클림트의 작품은, 작가의 삶과는 다르게 원래부터 하나하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요즘 그의 모조작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키스>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을 빈에서 살다간 화가의 그림이 21세기인 지금 주목을 받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의 그림이 주는 따뜻함과 차가움의 완벽한 대비의실마리는 금박이었다. <키스>에서는 연인을 둘러싼, 마치 배경같은 옷의 무늬가 주는 따뜻함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빛나보이고 단순히 사랑이주는 따뜻함을 떠올릴 수가 있다. 금이라는 물질이 주는 온화함과 키스라는 행위가 주는 달콤함을 클림트는 적절히 섞어놓고 시치미를 뗀다. 그 속에 숨겨진 화가가 지닌 여성과 남성에 대한 시각을.

물론,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여성의 화가로 불리는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잖이 질타를 받았던 그의 그림들은 전부 어떠한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연인들로부터 여성의 일생, 게다가 임산부까지 모든 것이 여성이며 그가 지닌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다. 유혹적인 이미지에서 부터 어머니로 표현되는 숭고함을 지닌 것 까지. 베르메르가 그린 여성들이 한결같은 깨끗함과 순수함을 지녔다면, 클림트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두 사람이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탓이며, 클림트가 한창 여성 해방운동의 조짐이 일어날 시기에 위기를 맞이한 남자들 중 한명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클림트의 <유디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양면성은 과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피카소나 다른 작가들이 가지고 있던, 여성성과는 조금 다른 듯이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그림 속 그녀들은 신화적이기도 하고, 가장 인간적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시대의 그림에 걸맞게 그의 작품에서는 임산부도 관능적일 수 있다. 반항을 몰고 다닐만큼 파격적이기도 하고, 내숭없이 드러내는 예술의 권리 또한 잘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작품이 마냥 페미니스트들에게서 환영 받을만한 것도 아니다. 여러곳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 변화는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이 작가는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렬한 자신만의 화풍을 지녔음에도, 결국 자신만의 화풍은 애초에 없는 듯 보인다.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유명 화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개방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결코 인간에게 없는 것을 요구 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 철학적이고 추상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사실적이지도 않은 클림트의 작품은 무엇보다 인간을 위한다. 삶과 죽음의 패러다임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들을 앞에 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거울처럼 비춰보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질문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것 처럼 말이다. 신화든 전설이든 인간의 삶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쓰고 우리가 읽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뭐든 다 그러하다. 가장 근본적인 것과 화려한 금빛의 조화,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화가, 클림트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