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을 맞다보면, 너무도 그리운 일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는데, 좀 더 생각하려 하면 소리도 없이 모습을 감추고 만다.

느닷없이 가슴이 술렁거리는 느낌.

뭔가를 알게 될듯한 조짐.

그리고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듯한 예감.

자신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를 사건이 다가오는 듯한, 조금은 두렵고 설레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애틋한 기분.

너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도, 인간은 슬퍼져.

나는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손발로 언니와 애인을 발굴했다.

비를 맞으며 잠시 거기에 선 채로 나는 '없었던 일'이 돼 버린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서로의 운명은 갈라졌고,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되었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이런 감정은 단순한 향수일 뿐, 쓰레기보다 허접하다. 서로의 인생에 실례가 되니까 하고 지워 버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요시모토씨는 갑자기 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1988년이라면 내가 1살때, 글은 커녕 업어달라고만 칭얼거리던 그 시절 아닌가, 그 때 그녀가 쓴 장편 소설이 다시 수정되어 출판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과거'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은 없었고... 왠지 요시모토의 젊음이 여름철 짙은 잎새처럼 녹아있기도 한 듯하다.

내용은 크게 두가지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이모가 알고보니 자신의 친 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 방황의 과정에서 사실은 남인 남동생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내 또래인 주인공, 야스오는 어떤 사건에 대해 민감한 예지력 혹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슬픈 예감이라는 제목이 잔잔한 물살을 가르는 작은 물고기처럼 빛나며, 내용은 어둡지도 찬란하지도 않은 늘 그렇듯 바나나의 글답게 흘러간다.

사춘기 시절 한번쯤은 하게 되는 생각은 자살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인지 의심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숨어버린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얼굴이 지금껏 기억할 수 있다면, 그런 걱정과 불안은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린시절의 기억이란 점점 그 빛을 잃어가며 결국엔 희미해지다가 흔적도 없이 숨어버린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잡하고 빡빡한 기억들의 창고 한 구석에 먼지쌓여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어느날 갑자기 그런 예감이 들었다면?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가정 속에서 자라온 자신이 그 행복에 아무리 애를써도 젖어들 수가 없다면....

핏줄은 그런것이 아닐까도 싶다. 우리나라가 혈연관계를 중요시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마음속이 너무나도 민감하고 똑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엮어가는 것은 물론 '마음먹기'를 배제할 수 없지만, 융화되었다고 생각한 자에게 갑자기 내려지는 사형선고같은 이질감이 문득 찾아온다면...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처럼 방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모라고 알아왔던 사람, 너무나도 신비스럽고 동경해왔으며 무언가 끌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알고보니 자신의 언니였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굉장히 침착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모래바람에 몸을 던지는 주인공이, 진정 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방황의 한 측면에는 데츠오, 그녀의 남동생이 있다. 처음엔 그저 돈독한 남매라는 것만을 각인하다가 결국 사랑임을 인정하는 과정이 왜인지 민트향처럼 시원하다. 그저 슬픈 예감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님을 주인공은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안심시킨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치 다음 전쟁을 치르러 떠나는 병사처럼 의지를 다졌다. 미래지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결코 과거를 떠나 살 수 없다. 오죽하면 프로이드는 아주아주 어린시절의 경험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했겠는가. 과거의 연속, 그것이 너무나 운명적이라 거부감이 든다면.... 어쩌면 우리는 미래지향이 아닌 과거를 수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있었던 '과거'를 다시끔 꺼내어 '미래'를 정한다. 떠날 길을 정하기 위해 던지는 주사위가 바로 그녀의 어린시절이라는 것이다.

야스오는 나아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한 것을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랑을 확신하면서 용감해지고,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당당해 지는 그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바나나는 또한번 정말 강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것...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슬픈 예감에 이입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야스오의 그 예쁜 마음이, 그리고 그 슬프지만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진정 행복에 스며들 수 있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