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팽'이란 제목과 무시무시한 표지의 그림에 아마도 그림의 주인공의 이름쯤이 아닐까...짐작하며 읽기 시작하였다.

 

지겹도록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빗줄기가 아닌 물폭탄을 쏟아붓는 장맛비가 모처럼 소강상태인지 반가운 햇살을 살짝 허락한 휴일에 온종일 '화이트팽'속에 푹~ 빠져들었다.

 

첫부분을 읽으며 눈보라속을 헤치며 시신을 운반하는 두 남자와 여섯 마리의 썰매개들 주변을 따라붙으며 한 마리씩 썰매개들을 유인해 해치워버리는 늑대무리와 암컷 늑대 이야기에 또 한 번의 짐작을 해보았다. 아마도, 늑대들의 위험으로부터 무사히 모험을 마치는 인간승리의 이야기?? 그러나, 나의 두 번째 짐작은 책장을 넘길수록 예상을 빗나가고 있음이 확연해졌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두 남자와 여섯 마리의 썰매개들은 온전히 화이트팽의 등장에 앞서 출연한 엑스트라 역이었음을, 그리고 암컷 늑대는 바로 화이트팽을 낳은 개의 혈통을 1/4쯤 이어받았음을 중반부를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암컷 늑대 곁을 끝까지 지켜낸 늙은 외눈박이 늑대을 아버지로 둔 화이트팽. 그러고보면 화이트팽 역시 100% 순수 혈통은 아니란 의미? 외눈박이 늑대의 외로운 싸움으로 모자(母子)만의 모험적인 삶이 펼쳐질 것 같지만 어느새 두 모자앞에 나타난 인디언들로 인해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오래 전 기억을 잊지 않은 어미 늑대 키체와 함께 인간들의 곁에 머물게 된 어린 늑대, 화이트팽. 화이트팽이란 인디언이 붙여준 '하얀 엄니'란 의미. 이후 화이트팽의 삶은 그의 이름처럼 하얀 엄니로 위험을 물리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이 펼쳐진다.

 

어미 늑대 키체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어린 늑대 화이트팽에게 인간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미 키체보다는 더 많은 늑대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었을까...... 오래 전 동족이었을 개들과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결코 친해질 수없었던 화이트팽.

 

길지 않았지만 어린시절 처음 동굴 밖 우연히 겪었던 혼자만의 사냥과 세상에 대한 각인으로 그의 가슴 속 한 켠에는 야생에 대한 자유와 본능이 갈등처럼 문득문득 떠오른다.

 

인디언 그레이비버와 뷰티 스미스를 겪으며 인간을 거역할 수 없는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 화이트팽.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채찍과 곤봉으로 자신 위에 군림하는 두려운 존재인 인간일 뿐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복종일뿐이었다.

 

너무 일찍 인간들에게 길들여진 화이트팽. 두어 번의 성공적인 탈출 후에도 결국 제 스스로 인간 곁으로 돌아오고만 화이트팽에게 동정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미치광이 뷰티 스미스로부터 화이트팽을 구원해준 스코트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고 진심어린 복종과 충성을 바치는 화이트팽의 변화를 보며 잠시나마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였다.

 

화이트팽의 마음과 모습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에 본성을 잃고 아니 대부분의 본성인 늑대보다는 어미인 키체로부터 물려받은 개의 본성을 서서히 일깨우며 살아가는 화이트팽. 옮긴이는 스코트가 사랑을 통해 화이트팽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지만, 제가 태어난 북극을 떠나 남쪽의 따뜻한 환경에서 눈을 그리워하는 늑대 화이트팽의 본능이 과연 사랑을 통해 온전히 변화되고 보상되어졌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화이트팽. 그는 어쩌면 그 스스로를 무력하게 희생시킨 나약한 정신의 상징은 아닐까.... 그가 모질게 살아낸 투쟁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의 무력과 폭력앞에 너무나도 쉽게 그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말았으니 말이다.